왜 한국 문화는 어느 때보다 위상이 높은데, 한국인들은 오히려 자국의 문화가 쇠퇴했다고 느끼는 걸까.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 오징어 게임과 최근 어쩔수가없다 까지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이토록 칭찬을 받은 적이 없었고, 한강 작가님이 노벨상을 타고, BTS와 블랙핑크, 더 나아가 K-pop 아이돌들이 수많은 미국 팝스타와 협업을 하고 네이버 웹툰은 현재 한국 일본 미국 중국 대만 프랑스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음.
그런데 한국 영화의 질적 하락에 대한 이야기는 201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고, 한국 소설에 대한 비판은 그 이전부터 있었음(특히 이상문학상 등의 문학상 수상 작품에 대한 비판). 한국 웹툰 망했다 라는 이야기는 이제 너무 지루한 레퍼토리라 반복하고 싶지도 않음.
물론 그냥 "좋았던 옛날 편향"일 수도 있음.
하지만 나 역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아쉬움이 여전히 존재함.
그리고 이에 대해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작품성과는 별개로 새로움이 사라졌다는 거임.
현재 한국 문화의 예술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생각함
기라성 같은 선배 예술가들이 쌓아온 반석 위에서 한국 문화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히 빛나고 있다고 생각함.
그러나, 그와 별개로, 더 이상 새로운 얼굴이 나오고 있지 않음.
앞서 에로 든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의 감독인 봉준호와 박찬욱 감독은 이미 50대를 넘어선 노년 감독임.
2000년대 최고의 배우를 꼽으면 최민식 황정민 이병헌 송강호 등이 나올 텐데, 2025년 지금도 최고의 배우는 이들임.
젊은 배우 중에서 연기력으로 기억을 남긴 배우가 누구 있더라?
유아인? 박정민? 정해인? 그 정도 외에는 기억 나는 젊은 배우가 없음.
한강 작가 역시 맨부커상을 받던 2007년의 30대 작가에서 이제 50대 작가가 되었음.
그나마 계속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는 음악계도 마찬가지임.
아이돌 얼굴만 바뀌지 프로듀서는 여전히 그대로고,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솔로 가수는 여전히 아이유가 최고인 것 같음.
비단 예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늙어버린 듯한 느낌이 조금씩 나는 거 같기도 함.
사실 나도 늙어서 그런 거 일 수도 있음.
내가 향유하는 문화의 형식이 이미 너무 낡아버린 걸 수도 있음.
매스미디어보다는 유튜브를, 단행본보다는 웹소설을, 긴 24부작 드라마보다는 더 짧은 형식의 웹드라마를 10대들이 더 선호하면서 자연스럽게 밀려나버린 것일지도.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조금 무서운 것 같음.
파편화는 필연적으로 질적 하락을 낳기 마련이니.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 오징어 게임과 최근 어쩔수가없다 까지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이토록 칭찬을 받은 적이 없었고, 한강 작가님이 노벨상을 타고, BTS와 블랙핑크, 더 나아가 K-pop 아이돌들이 수많은 미국 팝스타와 협업을 하고 네이버 웹툰은 현재 한국 일본 미국 중국 대만 프랑스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음.
그런데 한국 영화의 질적 하락에 대한 이야기는 201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고, 한국 소설에 대한 비판은 그 이전부터 있었음(특히 이상문학상 등의 문학상 수상 작품에 대한 비판). 한국 웹툰 망했다 라는 이야기는 이제 너무 지루한 레퍼토리라 반복하고 싶지도 않음.
물론 그냥 "좋았던 옛날 편향"일 수도 있음.
하지만 나 역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아쉬움이 여전히 존재함.
그리고 이에 대해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작품성과는 별개로 새로움이 사라졌다는 거임.
현재 한국 문화의 예술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생각함
기라성 같은 선배 예술가들이 쌓아온 반석 위에서 한국 문화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히 빛나고 있다고 생각함.
그러나, 그와 별개로, 더 이상 새로운 얼굴이 나오고 있지 않음.
앞서 에로 든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의 감독인 봉준호와 박찬욱 감독은 이미 50대를 넘어선 노년 감독임.
2000년대 최고의 배우를 꼽으면 최민식 황정민 이병헌 송강호 등이 나올 텐데, 2025년 지금도 최고의 배우는 이들임.
젊은 배우 중에서 연기력으로 기억을 남긴 배우가 누구 있더라?
유아인? 박정민? 정해인? 그 정도 외에는 기억 나는 젊은 배우가 없음.
한강 작가 역시 맨부커상을 받던 2007년의 30대 작가에서 이제 50대 작가가 되었음.
그나마 계속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는 음악계도 마찬가지임.
아이돌 얼굴만 바뀌지 프로듀서는 여전히 그대로고,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솔로 가수는 여전히 아이유가 최고인 것 같음.
비단 예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늙어버린 듯한 느낌이 조금씩 나는 거 같기도 함.
사실 나도 늙어서 그런 거 일 수도 있음.
내가 향유하는 문화의 형식이 이미 너무 낡아버린 걸 수도 있음.
매스미디어보다는 유튜브를, 단행본보다는 웹소설을, 긴 24부작 드라마보다는 더 짧은 형식의 웹드라마를 10대들이 더 선호하면서 자연스럽게 밀려나버린 것일지도.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조금 무서운 것 같음.
파편화는 필연적으로 질적 하락을 낳기 마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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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채널은 포르노일지도, 다큐멘터리일지도 몰라요
청소하면서 "성공 포르노"라는 오춘삼님 영상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유튜브 댓글을 보면 누군가는 콘텐츠를 포르노로 소비하기도, 다큐멘터리로 소비하기도 하더라구요.
포르노와 다큐멘터리를 구분 짓는 기준은 비단 콘텐츠 제작자의 의도에만 있는 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그 콘텐츠를 마주하는 우리들의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만드는 사람의 책임도 분명 있겠죠. 하지만 결국 콘텐츠라는 건, 제작할 때 어떤 의도로 빚어냈는가, 그리고 소비할 때 어떤 태도로 받아들였는가가 톱니바퀴처럼 딱 맞물렸을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겠지요.
생각해보면 좀 무서운 일이기도 해요. 제작자가 피땀 흘려 진실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더라도, 누군가가 그것을 단순히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며 얻는 안도감"이나 "화려한 결과물에 대한 맹목적인 부러움"으로만 소비한다면...
그 순간 그 영상은 그 사람에게 한낱 포르노가 되어버리는 걸 테니까요.
반대로 아주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소위 포르노성 콘텐츠를 보더라도 누군가는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자극적인 영상 속에서 '이 시대 사람들이 무엇에 결핍을 느끼는지', '왜 사회가 이렇게 흘러가는지'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성찰하며 본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시대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읽힐 수도 있는 거겠죠
여기서 제가 굳이 '포르노'라는 센 단어를 빌려온 건, 진짜 성인물을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 포르노'나 '빈곤 포르노' 같은 맥락인 거죠. 대상의 복잡한 삶과 앞뒤 맥락은 다 거세해 버리고, 오직 보는 사람의 말초적 자극. 그게 부러움이든, 동정심이든을 위해 대상을 납작하게 도구로만 쓰는 방식... 그걸 말하고 싶었어요.
결국 화면 속에 담긴 영상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반쪽짜리고, 나머지 반쪽을 채워 장르를 완성하는 건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은 글 적고 나서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yUimouUhP3E
청소하면서 "성공 포르노"라는 오춘삼님 영상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유튜브 댓글을 보면 누군가는 콘텐츠를 포르노로 소비하기도, 다큐멘터리로 소비하기도 하더라구요.
포르노와 다큐멘터리를 구분 짓는 기준은 비단 콘텐츠 제작자의 의도에만 있는 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그 콘텐츠를 마주하는 우리들의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만드는 사람의 책임도 분명 있겠죠. 하지만 결국 콘텐츠라는 건, 제작할 때 어떤 의도로 빚어냈는가, 그리고 소비할 때 어떤 태도로 받아들였는가가 톱니바퀴처럼 딱 맞물렸을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겠지요.
생각해보면 좀 무서운 일이기도 해요. 제작자가 피땀 흘려 진실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더라도, 누군가가 그것을 단순히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며 얻는 안도감"이나 "화려한 결과물에 대한 맹목적인 부러움"으로만 소비한다면...
그 순간 그 영상은 그 사람에게 한낱 포르노가 되어버리는 걸 테니까요.
반대로 아주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소위 포르노성 콘텐츠를 보더라도 누군가는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자극적인 영상 속에서 '이 시대 사람들이 무엇에 결핍을 느끼는지', '왜 사회가 이렇게 흘러가는지'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성찰하며 본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시대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읽힐 수도 있는 거겠죠
여기서 제가 굳이 '포르노'라는 센 단어를 빌려온 건, 진짜 성인물을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 포르노'나 '빈곤 포르노' 같은 맥락인 거죠. 대상의 복잡한 삶과 앞뒤 맥락은 다 거세해 버리고, 오직 보는 사람의 말초적 자극. 그게 부러움이든, 동정심이든을 위해 대상을 납작하게 도구로만 쓰는 방식... 그걸 말하고 싶었어요.
결국 화면 속에 담긴 영상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반쪽짜리고, 나머지 반쪽을 채워 장르를 완성하는 건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은 글 적고 나서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yUimouUhP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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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채널은 포르노일지도, 다큐멘터리일지도 몰라요 청소하면서 "성공 포르노"라는 오춘삼님 영상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유튜브 댓글을 보면 누군가는 콘텐츠를 포르노로 소비하기도, 다큐멘터리로 소비하기도 하더라구요. 포르노와 다큐멘터리를 구분 짓는 기준은 비단 콘텐츠 제작자의 의도에만 있는 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그 콘텐츠를 마주하는 우리들의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만드는 사람의 책임도 분명 있겠죠. 하지만 결국…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함.
현대 사회에서 포르노가 아닌 게 있을까.
신성한 축일인 크리스마스는 코카콜라의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고, 아마추어 정신과 인간 정신의 고귀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올림픽은 기업들의 광고판으로 변질되었음.
기후 위기의 심각함을 선포하는 다큐멘터리는 영화 만드는 데 엄청나게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넷플릭스의 조회수를 위해 만들어지고,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는 시사 프로그램은 상대 정당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수단으로 이용됨.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교사가 나온다고 포르노가 아닌 게 아니듯이, 조회수가 곧 돈이 되는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은 어텐션을 이끌어내기 위해 욕망을 자극하는 포르노와 다름없다고 생각함.
그 욕망이 어떨 땐 정의감으로 포장된 도덕적 우월감일 수도 있고, 향상심으로 포장된 지배욕일 수도 있음.
물론,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말을 할 수도 있음.
어쨌든 그 덕분에 기후 위기의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았냐, 올림픽을 보며 삶의 의지를 다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냐, 아무튼 크리스마스에 다들 행복해지지 않았냐.
왜 너만 그토록 삐딱하게 세상을 보냐.
뭐 누군가는 포르노를 보면서 자극을 얻을 수도 있다 라는 삐딱한 답변으로 끝내고 싶지만, 조금 더 생각이 많아짐.
저번에 썼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의 연장선이라 생각함.
아무도 인문학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 지금 이 시기,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곳이 어딜까.
그리고, 보통 인문학이 선택하는 길은 포르노임.
<고전에서 얻는 삶의 지혜>,<철학으로 얻는 성공의 비결>,<역사로 보는 승리하는 방식>같이 성공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며 대중에게 어필하는 스트립 댄서가 되기도 하고, <왜 00 정책은 실패하는가>,<00 정당이 쓰레기인 101가지 이유> 같은 권력자들에 대해 아부하기 위해 그럴듯한 근거를 만들어주는 창녀로 살기도 함.
지금이야 너무 많이 봐서 익숙해진 나머지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20대 초반 아직 인문학을 사랑하던 그 때의 나는 볼 때마다 심장이 아파왔음.
그딴 고민 왜 하냐. 돈만 벌면 장땡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음.
뭐 그런 생각은 존중하는데, 착하게 살자 같은 공자님 말씀을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로 치환되어 버린 현대 사회에서 내가 사랑하는 가치조차 거래되는 걸 볼 때의 씁쓸함을 의미하는 거임.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그냥 입을 닫아줬으면 좋겠음.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상품화되어 티셔츠로 팔리고, 철학이 성공의 발판으로 포장되어 지적 포르노를 제공하는 사회에서 굶어죽을지언정 대중에게 팔리기 위해 아양 떨지는 알겠다 라는 자존심은 사치일 수도 있음.
그런데 그런 자존심조차 잃어버린다면, 대체 선문답같은 헛소리 말고 인문학에게 남는 게 뭐가 있음?
인문학에 대해 쓸모 없다 라는 비난을 들어도 아무 말 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가슴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임.
사자 굴에 들어갈지언정 진리를 말하겠다는 각오를 잃어버린 순간부터, 인문학은 그저 권력자와 부자들의 지적 허영을 채워주는 매춘부가 되었으니까.
지금 인문학은 포르노가 맞음.
권력자에게 아부하고, 대중들에게 아양 떨고, 큰 불의에 침묵한 채 작은 불의만 도덕적 우월감을 보여주려 큰 소리로 떠들고 있음.
차라리 대놓고 돈으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사버리겠다는 피터 틸의 행동이 더 진정성 있어 보일 정도임.
"인간은 본질적으로 진리를 찾아내려는 사랑에 사로잡혀 있다."라고 말하며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진리를 추구했던 진리의 연인,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디올 로고가 박혀있는 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예수를 못 박았던 로마 제국의 박해를 차라리 그리워하지 않을까.
현대 사회에서 포르노가 아닌 게 있을까.
신성한 축일인 크리스마스는 코카콜라의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고, 아마추어 정신과 인간 정신의 고귀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올림픽은 기업들의 광고판으로 변질되었음.
기후 위기의 심각함을 선포하는 다큐멘터리는 영화 만드는 데 엄청나게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넷플릭스의 조회수를 위해 만들어지고,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는 시사 프로그램은 상대 정당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수단으로 이용됨.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교사가 나온다고 포르노가 아닌 게 아니듯이, 조회수가 곧 돈이 되는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은 어텐션을 이끌어내기 위해 욕망을 자극하는 포르노와 다름없다고 생각함.
그 욕망이 어떨 땐 정의감으로 포장된 도덕적 우월감일 수도 있고, 향상심으로 포장된 지배욕일 수도 있음.
물론,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말을 할 수도 있음.
어쨌든 그 덕분에 기후 위기의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았냐, 올림픽을 보며 삶의 의지를 다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냐, 아무튼 크리스마스에 다들 행복해지지 않았냐.
왜 너만 그토록 삐딱하게 세상을 보냐.
뭐 누군가는 포르노를 보면서 자극을 얻을 수도 있다 라는 삐딱한 답변으로 끝내고 싶지만, 조금 더 생각이 많아짐.
저번에 썼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의 연장선이라 생각함.
아무도 인문학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 지금 이 시기,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곳이 어딜까.
그리고, 보통 인문학이 선택하는 길은 포르노임.
<고전에서 얻는 삶의 지혜>,<철학으로 얻는 성공의 비결>,<역사로 보는 승리하는 방식>같이 성공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며 대중에게 어필하는 스트립 댄서가 되기도 하고, <왜 00 정책은 실패하는가>,<00 정당이 쓰레기인 101가지 이유> 같은 권력자들에 대해 아부하기 위해 그럴듯한 근거를 만들어주는 창녀로 살기도 함.
지금이야 너무 많이 봐서 익숙해진 나머지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20대 초반 아직 인문학을 사랑하던 그 때의 나는 볼 때마다 심장이 아파왔음.
그딴 고민 왜 하냐. 돈만 벌면 장땡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음.
뭐 그런 생각은 존중하는데, 착하게 살자 같은 공자님 말씀을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로 치환되어 버린 현대 사회에서 내가 사랑하는 가치조차 거래되는 걸 볼 때의 씁쓸함을 의미하는 거임.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그냥 입을 닫아줬으면 좋겠음.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상품화되어 티셔츠로 팔리고, 철학이 성공의 발판으로 포장되어 지적 포르노를 제공하는 사회에서 굶어죽을지언정 대중에게 팔리기 위해 아양 떨지는 알겠다 라는 자존심은 사치일 수도 있음.
그런데 그런 자존심조차 잃어버린다면, 대체 선문답같은 헛소리 말고 인문학에게 남는 게 뭐가 있음?
인문학에 대해 쓸모 없다 라는 비난을 들어도 아무 말 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가슴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임.
사자 굴에 들어갈지언정 진리를 말하겠다는 각오를 잃어버린 순간부터, 인문학은 그저 권력자와 부자들의 지적 허영을 채워주는 매춘부가 되었으니까.
지금 인문학은 포르노가 맞음.
권력자에게 아부하고, 대중들에게 아양 떨고, 큰 불의에 침묵한 채 작은 불의만 도덕적 우월감을 보여주려 큰 소리로 떠들고 있음.
차라리 대놓고 돈으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사버리겠다는 피터 틸의 행동이 더 진정성 있어 보일 정도임.
"인간은 본질적으로 진리를 찾아내려는 사랑에 사로잡혀 있다."라고 말하며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진리를 추구했던 진리의 연인,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디올 로고가 박혀있는 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예수를 못 박았던 로마 제국의 박해를 차라리 그리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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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warded from BZCF | 비즈까페
피터틸에게 영향을 많이 끼쳤다는. 그의 일부 글들 읽고 발췌. 지금 미국의 테크 기득권층이 어떤 방향을 바라보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내 경험상 대부분의 분별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중도', '비이념적', '실용적', '탈정치적', '무당파' 등의 단어로 스스로를 정의한다. 20세기 정치가 초래한 거대한 비극을 생각하면 이런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 오늘날 전 세계의 죽음과 파괴의 대부분은 바로 이런 태도 때문에 발생한다.중도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의견도 아니다. 생각도 아니다. 그것은 '생각의 부재'다."
"미국인들은 농노가 맞다. 정확히 말하면 기업 농노(Corporate serfs)다. 왜냐하면 미국은 기업(corporation)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어떤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하기로 합의한 개인들의 공식적인 구조물이다.
그래서 뭐? 그래, 난 기업 농노다. 이게 그렇게 끔찍한가? 난 꽤 익숙해진 것 같은데. 일주일에 이틀은 '스누티-스누트 경(Lord Snooty-Snoot)'을 위해 일한다. 아니면 '얼굴 없는 글로벌 프로덕트'라든지. 누구를 위해 일하는 지가 중요한가?"
https://blog.naver.com/bizucafe/224119519496
"내 경험상 대부분의 분별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중도', '비이념적', '실용적', '탈정치적', '무당파' 등의 단어로 스스로를 정의한다. 20세기 정치가 초래한 거대한 비극을 생각하면 이런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 오늘날 전 세계의 죽음과 파괴의 대부분은 바로 이런 태도 때문에 발생한다.중도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의견도 아니다. 생각도 아니다. 그것은 '생각의 부재'다."
"미국인들은 농노가 맞다. 정확히 말하면 기업 농노(Corporate serfs)다. 왜냐하면 미국은 기업(corporation)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어떤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하기로 합의한 개인들의 공식적인 구조물이다.
그래서 뭐? 그래, 난 기업 농노다. 이게 그렇게 끔찍한가? 난 꽤 익숙해진 것 같은데. 일주일에 이틀은 '스누티-스누트 경(Lord Snooty-Snoot)'을 위해 일한다. 아니면 '얼굴 없는 글로벌 프로덕트'라든지. 누구를 위해 일하는 지가 중요한가?"
https://blog.naver.com/bizucafe/224119519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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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반동주의
피터틸에게 영향을 많이 끼쳤다는. 그의 일부 글들 읽고 발췌. 지금 미국의 테크 기득권층이 어떤 방향을 바라보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피히테 - 셀링 - 헤겔로 이어지는 거대한 관념론의 끝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지도자라는 결론의 나치즘이었고
헤겔식 변증법 - 마르크스식 변증법적 유물론 - 레닌의 소비에트 사회주의로 이어지는 거대한 유물론의 끝은 주체사상이고
부르주아 자유주의 - 오스트리안학파의 수학적 관념론 - 레이건식 신자유주의의 끝은 국가 CEO 수립이네요
흥미로운 건 헤겔의 관념론, 마르크스의 유물론, 부르주아의 자유주의 모두 그 기반은 "자유"라는 컨텍스트 안에서 일어났다는 겁니다. 모든 인간의 자유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사상의 궁극적 끝이 언제나 지배로 이어지는 걸 볼 때마다 참 묘함을 감출 수 없네요
헤겔식 변증법 - 마르크스식 변증법적 유물론 - 레닌의 소비에트 사회주의로 이어지는 거대한 유물론의 끝은 주체사상이고
부르주아 자유주의 - 오스트리안학파의 수학적 관념론 - 레이건식 신자유주의의 끝은 국가 CEO 수립이네요
흥미로운 건 헤겔의 관념론, 마르크스의 유물론, 부르주아의 자유주의 모두 그 기반은 "자유"라는 컨텍스트 안에서 일어났다는 겁니다. 모든 인간의 자유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사상의 궁극적 끝이 언제나 지배로 이어지는 걸 볼 때마다 참 묘함을 감출 수 없네요
흑백요리사 2 보면서 느낀 점
안성재 쉐프는 탈락시킨 식당도 가보고 싶은데, 백종원 대표가 탈락시킨 식당은 가보고 싶지 않다
그런데 백종원 대표가 극찬한 식당과 안성재 쉐프가 극찬한 식당 둘 중 하나만 고르라 하면 백종원 대표가 극찬한 식당 먹으러 갈듯
안성재 쉐프는 탈락시킨 식당도 가보고 싶은데, 백종원 대표가 탈락시킨 식당은 가보고 싶지 않다
그런데 백종원 대표가 극찬한 식당과 안성재 쉐프가 극찬한 식당 둘 중 하나만 고르라 하면 백종원 대표가 극찬한 식당 먹으러 갈듯
영서의 일기장
https://www.youtube.com/shorts/Pe5yjhsIQ78 매거진 만들면서 느낀 점 1 ) 진짜 세상이 너무 쉬워졌다. 이번에 매거진 만들면서 제일 많이 든 생각은 단연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걸까?"였음. 단순히 AI 때문만이 아님. 이번에 매거진 디자인에 사용한 툴은 affinity라고 옛날에 어도비 대체재로 꽤 유명했던 프로그램임. 근데 최근에 여길 캔바가 인수하면서 이걸 무료로 풀어버림. 불과 4년 전에, 나는 포토샵 대신…
매거진 만들면서 느낀 점 2 )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매거진을 만들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병목은 디자인이었다고 생각함.
글이야 사학과 다니면서 밥 먹고 하루종일 글 읽고 글만 쓴, 할 줄 아는 거라곤 글쓰는 것 밖에 없는 먹물이니까 힘들지 않았고, 코딩은 제미나이가 시키는 대로만 했으니 수월하게 했음.
하지만 디자인은 진짜 쉽지 않았는데, 편집 디자인을 만만하게 본 게 패착이었음.
ppt나 웹 디자인은 굉장히 다양한 요소를 사용할 수 있고, 내용을 줄일 수 있으니 별 상관이 없었지만 편집 디자인은 많은 텍스트와 내용을 넣으면서도 최대한 미적 디테일을 챙겨야 하는게 미칠 것 같았음.
뭐랄까... 디자인 요소를 넣는 게 극히 제한이 되어 있다보니 레이아웃이나 폰트, 이미지 같은 보이는 곳을 극한으로 갈고 닦아야 하는 느낌?
솔직히 개인적으론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어쨌든 한계까지 짜내서 만들었긴 함.
문제는 이건 AI가 해줄 수 없다는 점.
편집 디자인이야 AI가 깔쌈하게 해줄 수 있지만, 전체적인 의도와 컨셉에 맞게 모든 요소를 정렬하는 게 문제였음.
비유하자면 AI가 만든 코스 요리의 각 디시는 퍼펙트한 수준이지만, 그 디시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챙기는 건 불가능했음.
결국 전체적인 방향성과 디테일은 온전히 내가 조율해야 하는 몫이었음.
중요한 건 안목이자, 동시에 어텐션과 책임이라는 말이 절실히 와닿았음.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결과물 전체를 하나의 방향으로 조합하는 능력 아닐까
앞으로 AI 에이전트끼리 서로 통신하면서 발전해나가는 경지에 이른다면 모를까, 아직까지 각 파츠에 대한 결합은 결국 인간이 해야 함.
미묘한 어긋남의 결을 하나로 가다듬고, 제대로 결합하지 않은 엉성한 틈을 메꾸는 것.
그것이 앞으로 AI 시대 때 가장 중요하게 나올 능력이라 생각함.
매거진은 여전히 곳곳에서 병목이 좀 보이긴 함.
웹사이트도, 글의 퀄리티도, 디자인도 내가 만족하는 수준까지는 오지 못했음.
그 가장 큰 이유는 AI가 채워주지 못한 그 미묘한 부분이 조금씩 눈에 들어와서라고 생각함.
그리고 그 2%가 앞으로 AI 창작물이 범람하는 시대에 다른 컨텐츠에 대한 엣지를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모든 걸 다 100% 잘할 필요는 없지만, 모든 분야에서 적어도 70% 이상은 해야 되는 시대가 온 것 같음.
매거진을 만들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병목은 디자인이었다고 생각함.
글이야 사학과 다니면서 밥 먹고 하루종일 글 읽고 글만 쓴, 할 줄 아는 거라곤 글쓰는 것 밖에 없는 먹물이니까 힘들지 않았고, 코딩은 제미나이가 시키는 대로만 했으니 수월하게 했음.
하지만 디자인은 진짜 쉽지 않았는데, 편집 디자인을 만만하게 본 게 패착이었음.
ppt나 웹 디자인은 굉장히 다양한 요소를 사용할 수 있고, 내용을 줄일 수 있으니 별 상관이 없었지만 편집 디자인은 많은 텍스트와 내용을 넣으면서도 최대한 미적 디테일을 챙겨야 하는게 미칠 것 같았음.
뭐랄까... 디자인 요소를 넣는 게 극히 제한이 되어 있다보니 레이아웃이나 폰트, 이미지 같은 보이는 곳을 극한으로 갈고 닦아야 하는 느낌?
솔직히 개인적으론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어쨌든 한계까지 짜내서 만들었긴 함.
문제는 이건 AI가 해줄 수 없다는 점.
편집 디자인이야 AI가 깔쌈하게 해줄 수 있지만, 전체적인 의도와 컨셉에 맞게 모든 요소를 정렬하는 게 문제였음.
비유하자면 AI가 만든 코스 요리의 각 디시는 퍼펙트한 수준이지만, 그 디시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챙기는 건 불가능했음.
결국 전체적인 방향성과 디테일은 온전히 내가 조율해야 하는 몫이었음.
중요한 건 안목이자, 동시에 어텐션과 책임이라는 말이 절실히 와닿았음.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결과물 전체를 하나의 방향으로 조합하는 능력 아닐까
앞으로 AI 에이전트끼리 서로 통신하면서 발전해나가는 경지에 이른다면 모를까, 아직까지 각 파츠에 대한 결합은 결국 인간이 해야 함.
미묘한 어긋남의 결을 하나로 가다듬고, 제대로 결합하지 않은 엉성한 틈을 메꾸는 것.
그것이 앞으로 AI 시대 때 가장 중요하게 나올 능력이라 생각함.
매거진은 여전히 곳곳에서 병목이 좀 보이긴 함.
웹사이트도, 글의 퀄리티도, 디자인도 내가 만족하는 수준까지는 오지 못했음.
그 가장 큰 이유는 AI가 채워주지 못한 그 미묘한 부분이 조금씩 눈에 들어와서라고 생각함.
그리고 그 2%가 앞으로 AI 창작물이 범람하는 시대에 다른 컨텐츠에 대한 엣지를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모든 걸 다 100% 잘할 필요는 없지만, 모든 분야에서 적어도 70% 이상은 해야 되는 시대가 온 것 같음.
https://www.youtube.com/watch?v=d95J8yzvjbQ
제가 20대 초반에 세운 20대가 지나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다큐멘터리(혹은 단편영화) 제작 이었습니다.
결국 다큐멘터리나 단편영화 찍기 대신 매거진으로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은 했는데, 뭔가 이거 보니 다시 다큐멘터리를 찍어보고 싶단 생각이 드네요
제가 20대 초반에 세운 20대가 지나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다큐멘터리(혹은 단편영화) 제작 이었습니다.
결국 다큐멘터리나 단편영화 찍기 대신 매거진으로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은 했는데, 뭔가 이거 보니 다시 다큐멘터리를 찍어보고 싶단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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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inking Game | Full documentary | Tribeca Film Festival official selection
The Thinking Game takes you on a journey into the heart of DeepMind, capturing a team striving to unravel the mysteries of intelligence and life itself.
Filmed over five years by the award winning team behind AlphaGo, the documentary examines how Demis Hassabis’s…
Filmed over five years by the award winning team behind AlphaGo, the documentary examines how Demis Hassabis’s…
흑백요리사 2 본 후기 1) 프로그램 자체로의 평가
일단 처음으로 느낀 건, 극의 퀄리티가 굉장히 높다 라는 생각
처음에는 너무 익숙한 편집(첫 도전자 탈락시키기, 대충 감성 팔이와 함께 합격, 비슷한 사람 대비하면서 한 명은 붙이고 한 명은 떨어트리기)에 좀 식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음.
너무 안전빵으로 한 게 아닌가?
그런데 보면 볼 수록 전반적인 짜임새가 잘 만든 것 같음.
특히 첫 번째 팀전은 밸런스가 딱 정확했다고 생각함.
너무 수련회 메타가 되지 않도록 배점은 셋으로 나눴지만, 그 와중에 패자에게 약간의 어드밴티지는 줌으로써 긴장감을 조성한 그 절묘한 규칙이 ㄹㅇ 킥이었다고 생각함.
그리고 또 느낀 게, 최대한 시즌 1의 피드백을 반영한 느낌.
내가 생각하는 흑백요리사 시즌 1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개가 있는데, 팀전의 불쾌감과(방출 룰 같은), 너무 과한 캐릭터성 부여로 출연진에게 비난이 쇄도한(나폴리 마피아라던가, 평가절하라던가) 면이 있다고 생각함.
그런데 이번엔 그걸 최대한 덜한 느낌.
평가절하가 다시 나왔는데도 일부러 통편집하고, 팀전에서도 선재스님이 매시 잘한다고 억빠해줄 정도로 최대한 빌런을 안 만들겠다는 티가 났음.
뭐 요리괴물이라는 예외 케이스가 하나 있긴 한데, 대신 요리괴물이 가진 빌런성만큼이나 (솔직히 좀 과할 정도로) 요리괴물의 실력을 편집으로 억빠해줬다고 생각함.
솔직히 시즌 1의 트리플 셰프가 요리괴물만큼 잘했는데(팀전 두 번 다 하드캐리하고, 3위까지 버팀) 트리플 셰프가 편집으로 이정도 칭찬 받았나? 그건 아니었다고 생각함.
팀전 룰도 공들여 짰다는 티가 났음.
전에 고평가 받은 1: 1 블라인드 대결과 80명 직접 평가는 그대로 살리고, 평가가 안 좋았던 패자부활전이랑 레스토랑 미션은 과감히 삭제.
방출룰도 굉장히 신선하게 전개되어서 시즌 1보다는 덜 불쾌하면서도 도파민은 미쳤음
아마 평이 좋았던 무한 요리 지옥도 하지 않을까 생각중.
마지막으로, 넷플릭스의 자본력을 맛볼 수 있었다.
세트장 퀄리티도 제정신이 아닌 데다가, 출연진들 수준도 말이 안됨.
AI 시대에 뭘 할 수 있냐 라는 질문에 우리 같은 다슬기들이 뭐 인간만의 창의성이니 뭐니 헛소리 할 때, 압도적인 자본은 AI 창작물을 뛰어넘는다는 걸 보여줬음.
결국 AI 창작물이 지금은 신선함을 가지고 있어서 많이 주목을 받지만, 오히려 AI 창작물이 범람하게 될 수록 이런 대규모 자본을 통한 예능 프로그램이 더욱 주목을 받지 않을까 라는 생각.
일단 처음으로 느낀 건, 극의 퀄리티가 굉장히 높다 라는 생각
처음에는 너무 익숙한 편집(첫 도전자 탈락시키기, 대충 감성 팔이와 함께 합격, 비슷한 사람 대비하면서 한 명은 붙이고 한 명은 떨어트리기)에 좀 식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음.
너무 안전빵으로 한 게 아닌가?
그런데 보면 볼 수록 전반적인 짜임새가 잘 만든 것 같음.
특히 첫 번째 팀전은 밸런스가 딱 정확했다고 생각함.
너무 수련회 메타가 되지 않도록 배점은 셋으로 나눴지만, 그 와중에 패자에게 약간의 어드밴티지는 줌으로써 긴장감을 조성한 그 절묘한 규칙이 ㄹㅇ 킥이었다고 생각함.
그리고 또 느낀 게, 최대한 시즌 1의 피드백을 반영한 느낌.
내가 생각하는 흑백요리사 시즌 1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개가 있는데, 팀전의 불쾌감과(방출 룰 같은), 너무 과한 캐릭터성 부여로 출연진에게 비난이 쇄도한(나폴리 마피아라던가, 평가절하라던가) 면이 있다고 생각함.
그런데 이번엔 그걸 최대한 덜한 느낌.
평가절하가 다시 나왔는데도 일부러 통편집하고, 팀전에서도 선재스님이 매시 잘한다고 억빠해줄 정도로 최대한 빌런을 안 만들겠다는 티가 났음.
뭐 요리괴물이라는 예외 케이스가 하나 있긴 한데, 대신 요리괴물이 가진 빌런성만큼이나 (솔직히 좀 과할 정도로) 요리괴물의 실력을 편집으로 억빠해줬다고 생각함.
솔직히 시즌 1의 트리플 셰프가 요리괴물만큼 잘했는데(팀전 두 번 다 하드캐리하고, 3위까지 버팀) 트리플 셰프가 편집으로 이정도 칭찬 받았나? 그건 아니었다고 생각함.
팀전 룰도 공들여 짰다는 티가 났음.
전에 고평가 받은 1: 1 블라인드 대결과 80명 직접 평가는 그대로 살리고, 평가가 안 좋았던 패자부활전이랑 레스토랑 미션은 과감히 삭제.
방출룰도 굉장히 신선하게 전개되어서 시즌 1보다는 덜 불쾌하면서도 도파민은 미쳤음
아마 평이 좋았던 무한 요리 지옥도 하지 않을까 생각중.
마지막으로, 넷플릭스의 자본력을 맛볼 수 있었다.
세트장 퀄리티도 제정신이 아닌 데다가, 출연진들 수준도 말이 안됨.
AI 시대에 뭘 할 수 있냐 라는 질문에 우리 같은 다슬기들이 뭐 인간만의 창의성이니 뭐니 헛소리 할 때, 압도적인 자본은 AI 창작물을 뛰어넘는다는 걸 보여줬음.
결국 AI 창작물이 지금은 신선함을 가지고 있어서 많이 주목을 받지만, 오히려 AI 창작물이 범람하게 될 수록 이런 대규모 자본을 통한 예능 프로그램이 더욱 주목을 받지 않을까 라는 생각.
회고록...은 아니고 2026년 델포이 매거진 계획
최종 목표는 델포이라는 매거진을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 하게 만드는 것
1. 오프라인 밋업 개최
아무리 유명한 저자나 신문사라도, 결국엔 끊임없는 네트워킹과 오프라인 만남 없이는 확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조금 더 양방향적인 소통이 가능한 시간을 만들어보려 함
개인적으로 그리고 있는 그림으로는, 학회가 너무 전문적이고, 밋업은 너무 가벼운 느낌이 강하다보니 그 중간 어딘가에 수요가 있지 않을까 해서 학회들이랑 같이 무언가를 해볼까 라는 생각이 있음
2. 유튜브 개설
원래라면 엄두도 못 냈겠지만, AI의 발전으로 영상을 개인이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버킷 리스트 하나 해결할 겸(단편영화 찍기) 유튜브 한 번 해볼까 생각중임.
포맷이나 기획 같은 건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영상 쪽으로 확대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음
정 안되면 버튜버라도 할 예정.
3. 단행본 제작
뉴턴 하이라이트나 르몽드 디폴로마티크 같은 모델을 차용해서 괜찮은 퀄리티들의 글을 모아서 단행본을 제작해보는 것도 생각 중임.
다만 아직까지는 글의 퀄리티가 조금 아쉽고, 조금 더 "읽을 만한" 컨텐츠로 만들기 위해선 뭐가 필요할지 고민 중
너무 앞서나가는 거 아니냐? 라고 할 수 있는데 원래 취미가 망상이라 상관없음
최종 목표는 델포이라는 매거진을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 하게 만드는 것
1. 오프라인 밋업 개최
아무리 유명한 저자나 신문사라도, 결국엔 끊임없는 네트워킹과 오프라인 만남 없이는 확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조금 더 양방향적인 소통이 가능한 시간을 만들어보려 함
개인적으로 그리고 있는 그림으로는, 학회가 너무 전문적이고, 밋업은 너무 가벼운 느낌이 강하다보니 그 중간 어딘가에 수요가 있지 않을까 해서 학회들이랑 같이 무언가를 해볼까 라는 생각이 있음
2. 유튜브 개설
원래라면 엄두도 못 냈겠지만, AI의 발전으로 영상을 개인이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버킷 리스트 하나 해결할 겸(단편영화 찍기) 유튜브 한 번 해볼까 생각중임.
포맷이나 기획 같은 건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영상 쪽으로 확대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음
정 안되면 버튜버라도 할 예정.
3. 단행본 제작
뉴턴 하이라이트나 르몽드 디폴로마티크 같은 모델을 차용해서 괜찮은 퀄리티들의 글을 모아서 단행본을 제작해보는 것도 생각 중임.
다만 아직까지는 글의 퀄리티가 조금 아쉽고, 조금 더 "읽을 만한" 컨텐츠로 만들기 위해선 뭐가 필요할지 고민 중
너무 앞서나가는 거 아니냐? 라고 할 수 있는데 원래 취미가 망상이라 상관없음
❤2
<대홍수> 솔직 후기(스포일러 있음)
솔직히 하도 억까를 당해서, 약간 억빠를 하고 싶은 맘도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좀 생각이 바뀜
일단, 장르의 전환은 굉장히 까다롭고 조금은 위험한 방식임.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기생충이라면, 실패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파묘라고 생각함.
대홍수는 재난물에서 SF라는 조금은 리스키한 방식을 택함.
하지만, 엄밀히 말해 재난 상황이 시뮬레이션이라는 케이스는 좀 많았음.
셔터 아일랜드, 아이덴티티, 소스 코드 등 비슷한 장르가 벌써 머릿속에 몇 개 떠오름.
그리고 닥터후를 예전에 재밌게 본 내 입장에서, 닥터후 여러 에피소드가 겹쳐 보였음.
문제는 이러한 방식을 흥미진진하게 차용하기 위해선, 개인적으로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함.
첫 번째는 재난물 자체에서 서스펜스를 주고, 후반부로 넘어갈 때 반전과 함께 다시 보여주는 거임.
이 때 시뮬레이션이라는 힌트는 최소한으로만 주고, 그 힌트조차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들어 볼 때는 인지를 못하도록 해야 함.
두 번째는, 아예 완전히 재난 상황이지만 이질적인 요소를 팍팍 넣은 뒤, 관객들로 하여금 뭐지? 라는 생각을 들도록 계속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주는 방식임.
개인적으로 이러한 방식 최고봉은 닥터후의 에피소드 heaven sent라고 생각함.
닥터의 독백으로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주면서, 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을 계속 주고, "왜 이런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거지?" 라는 관객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할 때 쯤, 이 모든 것이 닥터 자신의 설계였다는 반전과 함께 장난 아닌 여운을 남긴 작품.
대홍수는 이 둘에 모두 실패했음.
첫 번째로, 초반의 재난물은 너무 작위적이고, 관객들로 하여금 몰입하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았음.
이 부분은 굳이 지적하지 않겠음.
왜냐하면 일부러 이렇게 했다는 느낌이 강함.
그렇다면 "어라 이게 뭐지" 라는 이질감과 그와 함께 불안감을 묘하게 줘야 하는데, 그걸 실패했음.
이상한 건 느꼈지만, 그 이상함이 위화감으로 오기엔, 각본이 너무 엉성했다고 생각함.
김다미가 맨날 소리지르는 것만 나오고, 애가 맨날 찡찡대는 것만 나오니 불쾌감만 더할 뿐.
결국 장르적 재미를 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시뮬레이션에 대한 떡밥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니 사람들은 이러한 영화를 보는 것에 쉽게 포기하게 만들 거라 생각함.
이게 극장용 영화라면 그래도 되겠지만, OTT라는 넷플릭스 환경에는 걸맞지 않았음.
거기에 더한 문제는, 인물이 너무 평면적이라는 거임.
인물이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게 아니라, 서사에 인물이 짜여진 도구처럼 사용되고 있음.
문제는, 초반부 단 두 명의 주인공으로 감정을 이끌어내고 몰입을 만들어야 하는데, 애는 그냥 평면적인 잼민이고 김다미는 그냥 모성애의 아름다움만을 강조하는 서사적 도구로밖에 느껴지지 않음.
그나마 박수를 쳐줄 부분이 있다면 딥러닝을 루프물과 연관지은 아이디어 하나 정도?
그런데 이것도 후반부에 나와서 뭐랄까... 가능성이 하나 있다 정도의 느낌임.
후반부의 몰입은 나쁘지 않았지만, 차라리 어설프게 딥러닝으로 반전을 노리기보단 중반부에 이 아이디어를 배치하고, 아예 우주선조차도 시뮬레이션이었다거나, 실은 모든 흑막이 아이였다는 반전을 후반부에 넣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 시즌 3도 재밌게 보고 조커 2도 나쁘지 않게 본 입장에서, 대홍수도 이 정도로 평가가 박하면 보통 대중이 틀렸다는 마음으로 봤지만, 대홍수는 개인적으로 최악 까진 아니더라도 결코 좋게 평가 못할 것 같음.
결론 : 닥터후 보세요. 걍 대홍수 상위호환 에피소드가 널려있음
솔직히 하도 억까를 당해서, 약간 억빠를 하고 싶은 맘도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좀 생각이 바뀜
일단, 장르의 전환은 굉장히 까다롭고 조금은 위험한 방식임.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기생충이라면, 실패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파묘라고 생각함.
대홍수는 재난물에서 SF라는 조금은 리스키한 방식을 택함.
하지만, 엄밀히 말해 재난 상황이 시뮬레이션이라는 케이스는 좀 많았음.
셔터 아일랜드, 아이덴티티, 소스 코드 등 비슷한 장르가 벌써 머릿속에 몇 개 떠오름.
그리고 닥터후를 예전에 재밌게 본 내 입장에서, 닥터후 여러 에피소드가 겹쳐 보였음.
문제는 이러한 방식을 흥미진진하게 차용하기 위해선, 개인적으로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함.
첫 번째는 재난물 자체에서 서스펜스를 주고, 후반부로 넘어갈 때 반전과 함께 다시 보여주는 거임.
이 때 시뮬레이션이라는 힌트는 최소한으로만 주고, 그 힌트조차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들어 볼 때는 인지를 못하도록 해야 함.
두 번째는, 아예 완전히 재난 상황이지만 이질적인 요소를 팍팍 넣은 뒤, 관객들로 하여금 뭐지? 라는 생각을 들도록 계속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주는 방식임.
개인적으로 이러한 방식 최고봉은 닥터후의 에피소드 heaven sent라고 생각함.
닥터의 독백으로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주면서, 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을 계속 주고, "왜 이런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거지?" 라는 관객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할 때 쯤, 이 모든 것이 닥터 자신의 설계였다는 반전과 함께 장난 아닌 여운을 남긴 작품.
대홍수는 이 둘에 모두 실패했음.
첫 번째로, 초반의 재난물은 너무 작위적이고, 관객들로 하여금 몰입하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았음.
이 부분은 굳이 지적하지 않겠음.
왜냐하면 일부러 이렇게 했다는 느낌이 강함.
그렇다면 "어라 이게 뭐지" 라는 이질감과 그와 함께 불안감을 묘하게 줘야 하는데, 그걸 실패했음.
이상한 건 느꼈지만, 그 이상함이 위화감으로 오기엔, 각본이 너무 엉성했다고 생각함.
김다미가 맨날 소리지르는 것만 나오고, 애가 맨날 찡찡대는 것만 나오니 불쾌감만 더할 뿐.
결국 장르적 재미를 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시뮬레이션에 대한 떡밥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니 사람들은 이러한 영화를 보는 것에 쉽게 포기하게 만들 거라 생각함.
이게 극장용 영화라면 그래도 되겠지만, OTT라는 넷플릭스 환경에는 걸맞지 않았음.
거기에 더한 문제는, 인물이 너무 평면적이라는 거임.
인물이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게 아니라, 서사에 인물이 짜여진 도구처럼 사용되고 있음.
문제는, 초반부 단 두 명의 주인공으로 감정을 이끌어내고 몰입을 만들어야 하는데, 애는 그냥 평면적인 잼민이고 김다미는 그냥 모성애의 아름다움만을 강조하는 서사적 도구로밖에 느껴지지 않음.
그나마 박수를 쳐줄 부분이 있다면 딥러닝을 루프물과 연관지은 아이디어 하나 정도?
그런데 이것도 후반부에 나와서 뭐랄까... 가능성이 하나 있다 정도의 느낌임.
후반부의 몰입은 나쁘지 않았지만, 차라리 어설프게 딥러닝으로 반전을 노리기보단 중반부에 이 아이디어를 배치하고, 아예 우주선조차도 시뮬레이션이었다거나, 실은 모든 흑막이 아이였다는 반전을 후반부에 넣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 시즌 3도 재밌게 보고 조커 2도 나쁘지 않게 본 입장에서, 대홍수도 이 정도로 평가가 박하면 보통 대중이 틀렸다는 마음으로 봤지만, 대홍수는 개인적으로 최악 까진 아니더라도 결코 좋게 평가 못할 것 같음.
결론 : 닥터후 보세요. 걍 대홍수 상위호환 에피소드가 널려있음
❤1
전쟁에 대해 개인적으로 조금 화가 나는 지점은, 남의 나라 에 태연히 침공을 했으면서도 아무 일도 없을 수 있을 거라는 미국 특유의 오만함이 너무 잘 보여서 인듯
여태까지 타국에 대한 군사 개입이 손쉬운 미국의 이득으로 끝난 적은 거의 없었는데(걸프전 정도?) 어차피 소규모 국가의 개입이니 금방 해치울 수 있다는 자신감인진 몰라도 이제는 최소한의 명분조차 챙기지 않은 채 처들어간다는 게 어이가 없음
베네수엘라부터 이란까지, 저런 식으로 계속 행동하다간 누가봐도 blowback을 받을 걸 알면서도 저런다는 건 워싱턴이 엄청나게 급해졌거나, 엄청나게 오만해졌거나, 혹은 둘 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음
여태까지 타국에 대한 군사 개입이 손쉬운 미국의 이득으로 끝난 적은 거의 없었는데(걸프전 정도?) 어차피 소규모 국가의 개입이니 금방 해치울 수 있다는 자신감인진 몰라도 이제는 최소한의 명분조차 챙기지 않은 채 처들어간다는 게 어이가 없음
베네수엘라부터 이란까지, 저런 식으로 계속 행동하다간 누가봐도 blowback을 받을 걸 알면서도 저런다는 건 워싱턴이 엄청나게 급해졌거나, 엄청나게 오만해졌거나, 혹은 둘 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음
물론 가장 싫었던 건 잠시나마 저게 내가 산 유빅스에 호재라는 생각이 들어서라는 점
내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어차피 지금 이 상황은 피가 흐를 수 밖에 없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이유로도 비극에 대한 태도가 무뎌지는 것을 합리화할 순 없다고 생각
특히 비극이 더욱 빨리 퍼지는 텔레그램 특성상 전쟁의 무게가 가벼워지거나 혹은 이것을 일종의 스포츠라고 인식할 수 있음.
그러나 10.10 사태 때 다들 텔레그램에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조차 꺼려하던 그 때에 비하면 더 큰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가볍게 소비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듦
내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어차피 지금 이 상황은 피가 흐를 수 밖에 없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이유로도 비극에 대한 태도가 무뎌지는 것을 합리화할 순 없다고 생각
특히 비극이 더욱 빨리 퍼지는 텔레그램 특성상 전쟁의 무게가 가벼워지거나 혹은 이것을 일종의 스포츠라고 인식할 수 있음.
그러나 10.10 사태 때 다들 텔레그램에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조차 꺼려하던 그 때에 비하면 더 큰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가볍게 소비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듦
❤6
brainrot과 Ai slop의 세상
원래 새해 다짐 따윈 잘 생각 안하고, 요번에도 준비하고 있는 게 몇 개 있다보니 그냥 그거 끝나고 뭐할지 생각하자 느낌으로 미뤄놨는데, 올해 새해 목표를 하나 세웠음.
책을 읽어야겠다
사실 나는 원래 새해 목표로 독서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음. 원래 늘 많이 읽으니까. 차라리 운동이라면 몰라, 살면서 독서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적은 없음. 그나마 작년이 책을 가장 적게 읽은 거 같긴 한데, 대신 활자 자체는 작년에 진짜 많이 읽었음. 리서치나 리포트를 만힝 읽다 보니까.
그런데, 요즘 들어 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음. 뭐랄까... 기초지식 없이 마구 쌓아올린 지식은 결국 파편화된 채 하나의 통일된 프레임워크를 만들어낼 수 없달까.
문제는 AI가 이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 그나마 다행인 건 나만 그렇다는 아니라는 점.
아마 조만간 사람들은 도파민 디톡스와 비슷하게 AI 디톡스를 말할 거임. 스스로 생각하고 훈련하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역으로, AI 시대 때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미리 한다면 더 좋은 시너지를 낼 거라 생각함.
2026년은 자산시장도 실물경기도 사회문화도 격변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함.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내 가치를 스스로 높이는 것. 그래서 이제 독서를 좀 의무적으로 할 생각임.
원래 새해 다짐 따윈 잘 생각 안하고, 요번에도 준비하고 있는 게 몇 개 있다보니 그냥 그거 끝나고 뭐할지 생각하자 느낌으로 미뤄놨는데, 올해 새해 목표를 하나 세웠음.
책을 읽어야겠다
사실 나는 원래 새해 목표로 독서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음. 원래 늘 많이 읽으니까. 차라리 운동이라면 몰라, 살면서 독서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적은 없음. 그나마 작년이 책을 가장 적게 읽은 거 같긴 한데, 대신 활자 자체는 작년에 진짜 많이 읽었음. 리서치나 리포트를 만힝 읽다 보니까.
그런데, 요즘 들어 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음. 뭐랄까... 기초지식 없이 마구 쌓아올린 지식은 결국 파편화된 채 하나의 통일된 프레임워크를 만들어낼 수 없달까.
문제는 AI가 이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 그나마 다행인 건 나만 그렇다는 아니라는 점.
아마 조만간 사람들은 도파민 디톡스와 비슷하게 AI 디톡스를 말할 거임. 스스로 생각하고 훈련하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역으로, AI 시대 때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미리 한다면 더 좋은 시너지를 낼 거라 생각함.
2026년은 자산시장도 실물경기도 사회문화도 격변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함.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내 가치를 스스로 높이는 것. 그래서 이제 독서를 좀 의무적으로 할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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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warded from The ticker is ETH (sose)
비탈릭이 이야기하는 이더리움의 방향
"이더리움은 금융을 효율적으로 만들거나 앱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효율성"과 "편의성"은 이미 상당히 좋은 상황에서 평균적인 경우를 개선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효율성은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영혼을 쏟아 지연 시간을 473ms에서 368ms로 줄이거나, 수익률을 연 4.5%에서 5.3%로 높이는 것이다. 편의성은 사람들이 세 번 클릭하는 대신 한 번에 클릭하고, 가입 시간을 1분에서 20초로 줄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하는 것은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게임에서 실리콘밸리의 기업 플레이어들만큼 좋아질 수 없다는 이해 속에서 이것들을 해야 한다. 따라서 이더리움이 해야 할 핵심 게임은 다른 게임이어야 한다. 그 게임이 무엇인가? 복원력이다.
복원력은 연 4.5% 대 연 5.3%의 문제가 아니라, -100% APY가 될 확률을 최소화하는 게임이다.
복원력(Resilience)은 이런 게임이다. 당신이 정치적으로 인기를 잃고 플랫폼에서 제외되거나, 당신의 애플리케이션 개발자가 파산하거나 사라지거나, Cloudflare가 다운되거나, 인터넷 사이버 전쟁이 발발해도, 당신의 2000ms 지연 시간은 계속 2000ms로 유지됩니다.
복원력은 세계 어디에나 있는 누구나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1등급 참여자가 될 수 있는 게임입니다.
복원력은 주권입니다. UN 회원국이 되기 위해 로비하고 2주 안에 다보스에서 악수하는 의미의 주권이 아니라, 사람들이 "디지털 주권" 또는 "식량 주권"에 대해 말하는 의미의 주권입니다. 즉, 임의로 빼앗길 수 있는 외부 종속성에 대한 취약성을 공격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계 컴퓨터는 주권을 가질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용자들도 주권을 갖게 합니다.
이 기본 바탕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기업 지배자의 신민이 아니라, 평등한 것들 간의 상호의존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것이 이더리움이 승리할 수 있는 게임이며,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우리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할 가치를 제공합니다.
웹2 소비자 기술의 근본적인 DNA는 회복력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_금융_의 근본적인 DNA는 종종 회복력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이것은 매우 부분적인 형태의 회복력으로, 어떤 유형의 위험에는 잘 대처하지만 다른 위험에는 대처하지 못합니다.
블록스페이스는 풍부합니다. 탈중앙화되고, 비허가형이며, 회복력 있는 블록스페이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더리움은 먼저 무엇보다도 탈중앙화되고, 비허가형이며, 회복력 있는 블록스페이스여야 하고, 그 다음에 이를 풍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출처
"이더리움은 금융을 효율적으로 만들거나 앱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효율성"과 "편의성"은 이미 상당히 좋은 상황에서 평균적인 경우를 개선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효율성은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영혼을 쏟아 지연 시간을 473ms에서 368ms로 줄이거나, 수익률을 연 4.5%에서 5.3%로 높이는 것이다. 편의성은 사람들이 세 번 클릭하는 대신 한 번에 클릭하고, 가입 시간을 1분에서 20초로 줄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하는 것은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게임에서 실리콘밸리의 기업 플레이어들만큼 좋아질 수 없다는 이해 속에서 이것들을 해야 한다. 따라서 이더리움이 해야 할 핵심 게임은 다른 게임이어야 한다. 그 게임이 무엇인가? 복원력이다.
복원력은 연 4.5% 대 연 5.3%의 문제가 아니라, -100% APY가 될 확률을 최소화하는 게임이다.
복원력(Resilience)은 이런 게임이다. 당신이 정치적으로 인기를 잃고 플랫폼에서 제외되거나, 당신의 애플리케이션 개발자가 파산하거나 사라지거나, Cloudflare가 다운되거나, 인터넷 사이버 전쟁이 발발해도, 당신의 2000ms 지연 시간은 계속 2000ms로 유지됩니다.
복원력은 세계 어디에나 있는 누구나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1등급 참여자가 될 수 있는 게임입니다.
복원력은 주권입니다. UN 회원국이 되기 위해 로비하고 2주 안에 다보스에서 악수하는 의미의 주권이 아니라, 사람들이 "디지털 주권" 또는 "식량 주권"에 대해 말하는 의미의 주권입니다. 즉, 임의로 빼앗길 수 있는 외부 종속성에 대한 취약성을 공격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계 컴퓨터는 주권을 가질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용자들도 주권을 갖게 합니다.
이 기본 바탕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기업 지배자의 신민이 아니라, 평등한 것들 간의 상호의존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것이 이더리움이 승리할 수 있는 게임이며,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우리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할 가치를 제공합니다.
웹2 소비자 기술의 근본적인 DNA는 회복력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_금융_의 근본적인 DNA는 종종 회복력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이것은 매우 부분적인 형태의 회복력으로, 어떤 유형의 위험에는 잘 대처하지만 다른 위험에는 대처하지 못합니다.
블록스페이스는 풍부합니다. 탈중앙화되고, 비허가형이며, 회복력 있는 블록스페이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더리움은 먼저 무엇보다도 탈중앙화되고, 비허가형이며, 회복력 있는 블록스페이스여야 하고, 그 다음에 이를 풍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출처
X (formerly Twitter)
vitalik.eth (@VitalikButerin) on X
“Ethereum was not created to make finance efficient or apps convenient. It was created to set people free”
This was an important - and controversial - line from the Trustless Manifesto ( https://t.co/1F1Fe9OQPh ), and it is worth revisiting it and better…
This was an important - and controversial - line from the Trustless Manifesto ( https://t.co/1F1Fe9OQPh ), and it is worth revisiting it and better…
The ticker is ETH
비탈릭이 이야기하는 이더리움의 방향 "이더리움은 금융을 효율적으로 만들거나 앱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효율성"과 "편의성"은 이미 상당히 좋은 상황에서 평균적인 경우를 개선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효율성은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영혼을 쏟아 지연 시간을 473ms에서 368ms로 줄이거나, 수익률을 연 4.5%에서 5.3%로 높이는 것이다. 편의성은 사람들이 세 번 클릭하는 대신…
원래 크립토 관련은 크새에만 쓰고, 이 방에선 잘 안쓰지만, 이번 글은 여기서 쓰려고 함
이번 글은 비탈릭의 영리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비탈릭의 한계도 같이 보여준다고 생각함
비탈릭은 이더리움을 크립토라는 좁은 도메인을 벗어난, 사회 전체를 혁신하는 새로운 도구로 격상시켰음.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빈약한 사상적 토대 위에 이더리움을 위치시킴으로써 이더리움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 이상을 넘어설 수 업게 만들었음.
그 가장 큰 이유는 하나임
그가 던지는 탈중앙화라는 메세지는, 전혀 새롭지 않다는 점
그건 신 앞에 모두는 평등하다 라는 사상을 창조해낸 초기 기독교 사회나, 국가라는 절대정신 하에서 진정한 자유를 이룩할 수 있다는 헤겔의 아이디어와 똑같음.
그들은 권력이 마치 나무처럼 하나의 높이 솟아있는 구조물이라 생각했음.
그러나, 권력은 나무 줄기가 아닌 뿌리에 가까움.
권력은 네트워크 내에서 미시적으로 형성되며, 영향을 끼치고, 그 안에서 발생과 소멸을 거듭함.
월가와 리테일이 평등한 레벨에서 놀고, 중앙화된 주체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만들면 갑자기 탈중앙화가 될 것이다?
그건 마치 총알 하나면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이니까 왕이 있을 수 없다 라는 논리와 같음.
이더리움이 궁극의 자본의 이동 통로가 된다고 한들, 탈중앙화는 일어나지 않음.
그것은 이더리움이 결국 기술 레벨에서 놀기 때문이며, 그 위의 사회 문화적 구조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임.
물론 기술은 사회를 바꿈.
그러나 그것이 기술이 의도한 대로 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아님.
만일 비탈릭이 진정 탈중앙화를 실천하고 싶으면, 이더리움의 완성으로는 부족함.
그 위에 있을 거대한 사상적 구조물과, 사회 문화적 건축물을 새롭게 창조해내야 함.
물론, 폴리마켓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기는 함.
그러나, 그건 부족함.
사자와 양을 같은 우리에 넣은 뒤, 평등하게 살라고 하면 평등해지는 게 아님.
연준 대신 이더리움 위에서 거래를 하면 리테일은 우위를 가질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워 보임.
이더리움이 진정 크립토라는 도메인을 넘어서, 법과 사회 경제 전체의 인프라 레이어가 되고 싶다면, 이제는 이 문제에 직접 대면해야 함.
그저 기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며 ZK 수식을 트위터에다가 올리며 엔지니어의 삶을 사는 것과 동시에, 기술을 넘어선 사회 전체적 격변을 가져올 사상적 도구로서의 이더리움의 설계자로서의 삶을 같이 살 순 없음.
이젠 진짜 경제학과 사회학, 그리고 철학의 영역에 들어와, 그들과 함께 싸우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야 함.
크립토 너드들이랑 탈중앙화에 대한 오타쿠 같은 설정놀음만 할 게 아니라.
물론 이런 말을 하면 왜 해보지도 않았는데 초를 치냐고 말함.
그러나 내가 타임머신을 만들겠다고 한 뒤에, 그게 실패할 이유를 말하는 사람 앞에서 "왜 해보지도 않았는데 단정짓냐"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음.
실패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대야지, 그런 낭만화된 수사로 이것을 합리화할 순 없음.
이번 글은 비탈릭의 영리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비탈릭의 한계도 같이 보여준다고 생각함
비탈릭은 이더리움을 크립토라는 좁은 도메인을 벗어난, 사회 전체를 혁신하는 새로운 도구로 격상시켰음.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빈약한 사상적 토대 위에 이더리움을 위치시킴으로써 이더리움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 이상을 넘어설 수 업게 만들었음.
그 가장 큰 이유는 하나임
그가 던지는 탈중앙화라는 메세지는, 전혀 새롭지 않다는 점
그건 신 앞에 모두는 평등하다 라는 사상을 창조해낸 초기 기독교 사회나, 국가라는 절대정신 하에서 진정한 자유를 이룩할 수 있다는 헤겔의 아이디어와 똑같음.
그들은 권력이 마치 나무처럼 하나의 높이 솟아있는 구조물이라 생각했음.
그러나, 권력은 나무 줄기가 아닌 뿌리에 가까움.
권력은 네트워크 내에서 미시적으로 형성되며, 영향을 끼치고, 그 안에서 발생과 소멸을 거듭함.
월가와 리테일이 평등한 레벨에서 놀고, 중앙화된 주체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만들면 갑자기 탈중앙화가 될 것이다?
그건 마치 총알 하나면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이니까 왕이 있을 수 없다 라는 논리와 같음.
이더리움이 궁극의 자본의 이동 통로가 된다고 한들, 탈중앙화는 일어나지 않음.
그것은 이더리움이 결국 기술 레벨에서 놀기 때문이며, 그 위의 사회 문화적 구조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임.
물론 기술은 사회를 바꿈.
그러나 그것이 기술이 의도한 대로 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아님.
만일 비탈릭이 진정 탈중앙화를 실천하고 싶으면, 이더리움의 완성으로는 부족함.
그 위에 있을 거대한 사상적 구조물과, 사회 문화적 건축물을 새롭게 창조해내야 함.
물론, 폴리마켓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기는 함.
그러나, 그건 부족함.
사자와 양을 같은 우리에 넣은 뒤, 평등하게 살라고 하면 평등해지는 게 아님.
연준 대신 이더리움 위에서 거래를 하면 리테일은 우위를 가질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워 보임.
이더리움이 진정 크립토라는 도메인을 넘어서, 법과 사회 경제 전체의 인프라 레이어가 되고 싶다면, 이제는 이 문제에 직접 대면해야 함.
그저 기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며 ZK 수식을 트위터에다가 올리며 엔지니어의 삶을 사는 것과 동시에, 기술을 넘어선 사회 전체적 격변을 가져올 사상적 도구로서의 이더리움의 설계자로서의 삶을 같이 살 순 없음.
이젠 진짜 경제학과 사회학, 그리고 철학의 영역에 들어와, 그들과 함께 싸우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야 함.
크립토 너드들이랑 탈중앙화에 대한 오타쿠 같은 설정놀음만 할 게 아니라.
물론 이런 말을 하면 왜 해보지도 않았는데 초를 치냐고 말함.
그러나 내가 타임머신을 만들겠다고 한 뒤에, 그게 실패할 이유를 말하는 사람 앞에서 "왜 해보지도 않았는데 단정짓냐"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음.
실패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대야지, 그런 낭만화된 수사로 이것을 합리화할 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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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과연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사실 이건 사실상 상상의 영역임.
게다가 너무나도 뛰어난 사람들이 이미 다 말을 해서, 딱히 내가 거기서 더한 통찰을 가지고 올 순 없음.
다만, 문돌이로써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지점은 하나 있는 것 같음.
바로 AI가 생산력 그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해, AI가 자본주의를 끝내버릴 수 있을까?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운 시대에 살고 있음.
그래서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상상할 수는 없기에, 나는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역사학의 도구를 조금 사용하려 함.
나는 역사학의 도구를 사용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왠만하면 잘 안 맞어서), 그래도 워낙 초유의 사태니 과거의 지혜를 조금 빌릴 필요가 있어보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역사의 시대구분은 크게 세 개로 나눠짐.
고대 노예제/중세 봉건제/근대 자본주의
이걸 나누는 방식은 간단함.
무엇이 부를 생산해내는지에 관한 내용임.
고대는 인간 그 자체가 부를 생산하는 수단이었음.
그렇기에 고대의 생산수단은 노예였으며, 그렇기에 전쟁의 목적은 노예를 구하기 위함이었음.
그 시대가 끝나고, 중세 봉건제로 오게 됨.
봉건제의 핵심은 땅이었음.
토지가 곧 부의 근원이었고, 그렇기에 봉건제 하에서 전쟁은 언제나 토지를 갖기 위함이었음.
그러나 근대 자본주의 하에서, 은행과 증기기관이 탄생하게 되면서 부의 수단은 토지가 아닌 공장이 되었고, 자본 그 자체가 자본의 증식 도구로 활용하게 됨.
뭐 이게 사실이 맞는지는 둘째치고, 이런 도식화를 이용한다면 자본이 자본을 부르는(자본 그 자체가 생산수단으로 작용하는) 시대가 끝나면 그 다음은 뭘까?
이걸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라고 선언함.
하도 공산주의가 나쁘다고 세뇌당한 나머지, 공산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기겁을 하지만 의외로 AI가 가지고 올 사회 혁신에 대해 들어보면 공산주의와 너무 비슷한 면이 있음.
생산수단이 AI가 소유하고 생산을 하고, 그걸 다시 공평하게 배분하며 인간은 잉여생산물로 편하게 삶을 사는 삶.
19세기 유물론자들이 꿈꾸던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어보임.
물론, 역사가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갈 리는 없음.
그렇다고 AI가 그 자체로 자본주의를 심화시킬 거란 단순한 통찰 역시도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함.
개인적인 생각은 AI로 인한 초기 사회 혼란이 지나면, 사회 전체가 AI에 걸맞게 개조하는 시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함.
로보틱스가 생산을 혁신하고, 자율주행이 유통을 혁신하며, AI가 분배를 혁신한다면 지금의 도시, 국가, 사회 시스템으로는 적용이 안됨.
결국, 국채를 미친듯이 찍어내든 돈을 미친듯이 쓰든 간에 막대한 인프라 배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함.
이 과정에서, 실업이 아니라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함.
마치 뉴딜 시기나 전후 유럽과 미국의 엄청난 GDP 상승처럼, 인프라를 만들기 위한 엄청난 노동력을 요구하게 될 거라 생각함.
다른 게 있다면, 뉴딜은 인위적 재건이고, 전후 유럽은 전후 재건인데 반해, 이번에는 새로운 시대라는 내러티브를 통해 재건을 할 거임.
여기서 병목이 발생한다면 전쟁 외에는 방법이 없겠지만, 어찌어찌 잘 넘긴다 치면 이제 거기서부터는 이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함.
사고하고 노동하며 대화하는 근대의 인간이 AI와 함께 끝나버린다면,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바로 이 지점에서 수 많은 가치관의 혼란이 있을 거라 생각함.
어디까지가 사람이며,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여기서 AI 시대에 맞는 사상적 구조물이 만들어진다면, 우리가 아는 모든 관념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세 줄 요약
- AI는 자본주의 그 자체를 끝낼 수 있다
- AI 시대 초기에는 AI에 걸맞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히려 엄청난 노동력 수요가 생길 것이다
- 그 세팅이 끝나면, 인간과 노동,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관념의 변화가 따를 것이다(어캐 바뀔지는 몰?루)
사실 이건 사실상 상상의 영역임.
게다가 너무나도 뛰어난 사람들이 이미 다 말을 해서, 딱히 내가 거기서 더한 통찰을 가지고 올 순 없음.
다만, 문돌이로써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지점은 하나 있는 것 같음.
바로 AI가 생산력 그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해, AI가 자본주의를 끝내버릴 수 있을까?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운 시대에 살고 있음.
그래서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상상할 수는 없기에, 나는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역사학의 도구를 조금 사용하려 함.
나는 역사학의 도구를 사용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왠만하면 잘 안 맞어서), 그래도 워낙 초유의 사태니 과거의 지혜를 조금 빌릴 필요가 있어보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역사의 시대구분은 크게 세 개로 나눠짐.
고대 노예제/중세 봉건제/근대 자본주의
이걸 나누는 방식은 간단함.
무엇이 부를 생산해내는지에 관한 내용임.
고대는 인간 그 자체가 부를 생산하는 수단이었음.
그렇기에 고대의 생산수단은 노예였으며, 그렇기에 전쟁의 목적은 노예를 구하기 위함이었음.
그 시대가 끝나고, 중세 봉건제로 오게 됨.
봉건제의 핵심은 땅이었음.
토지가 곧 부의 근원이었고, 그렇기에 봉건제 하에서 전쟁은 언제나 토지를 갖기 위함이었음.
그러나 근대 자본주의 하에서, 은행과 증기기관이 탄생하게 되면서 부의 수단은 토지가 아닌 공장이 되었고, 자본 그 자체가 자본의 증식 도구로 활용하게 됨.
뭐 이게 사실이 맞는지는 둘째치고, 이런 도식화를 이용한다면 자본이 자본을 부르는(자본 그 자체가 생산수단으로 작용하는) 시대가 끝나면 그 다음은 뭘까?
이걸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라고 선언함.
하도 공산주의가 나쁘다고 세뇌당한 나머지, 공산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기겁을 하지만 의외로 AI가 가지고 올 사회 혁신에 대해 들어보면 공산주의와 너무 비슷한 면이 있음.
생산수단이 AI가 소유하고 생산을 하고, 그걸 다시 공평하게 배분하며 인간은 잉여생산물로 편하게 삶을 사는 삶.
19세기 유물론자들이 꿈꾸던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어보임.
물론, 역사가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갈 리는 없음.
그렇다고 AI가 그 자체로 자본주의를 심화시킬 거란 단순한 통찰 역시도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함.
개인적인 생각은 AI로 인한 초기 사회 혼란이 지나면, 사회 전체가 AI에 걸맞게 개조하는 시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함.
로보틱스가 생산을 혁신하고, 자율주행이 유통을 혁신하며, AI가 분배를 혁신한다면 지금의 도시, 국가, 사회 시스템으로는 적용이 안됨.
결국, 국채를 미친듯이 찍어내든 돈을 미친듯이 쓰든 간에 막대한 인프라 배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함.
이 과정에서, 실업이 아니라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함.
마치 뉴딜 시기나 전후 유럽과 미국의 엄청난 GDP 상승처럼, 인프라를 만들기 위한 엄청난 노동력을 요구하게 될 거라 생각함.
다른 게 있다면, 뉴딜은 인위적 재건이고, 전후 유럽은 전후 재건인데 반해, 이번에는 새로운 시대라는 내러티브를 통해 재건을 할 거임.
여기서 병목이 발생한다면 전쟁 외에는 방법이 없겠지만, 어찌어찌 잘 넘긴다 치면 이제 거기서부터는 이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함.
사고하고 노동하며 대화하는 근대의 인간이 AI와 함께 끝나버린다면,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바로 이 지점에서 수 많은 가치관의 혼란이 있을 거라 생각함.
어디까지가 사람이며,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여기서 AI 시대에 맞는 사상적 구조물이 만들어진다면, 우리가 아는 모든 관념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세 줄 요약
- AI는 자본주의 그 자체를 끝낼 수 있다
- AI 시대 초기에는 AI에 걸맞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히려 엄청난 노동력 수요가 생길 것이다
- 그 세팅이 끝나면, 인간과 노동,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관념의 변화가 따를 것이다(어캐 바뀔지는 몰?루)
영서의 일기장
인간과 노동,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관념의 변화
사실 이것도 어느 정도 생각이 있긴 한데, 글이 좀 너무 많이 길어지는 것 같아서 나중에 정리해볼게요
다시 읽어보니 너무 좀 글이 거친 느낌인데, 일기장이니 제가 이해하면 되는 거니 상관 없지 않을까요? 흠흠
다시 읽어보니 너무 좀 글이 거친 느낌인데, 일기장이니 제가 이해하면 되는 거니 상관 없지 않을까요?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