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보다 지속이 훨씬 특별하다
복리의 신봉자 워런 버핏은 '1)돈을 잃지 말라 2)첫 번째 원칙을 잊지 말라’라는 두 가지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런데 원칙의 간결함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유지'했다는 측면이 그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는 1930년 생이어서 70년대 석유파동, 80년대 블랙먼데이, 90년대 걸프전쟁과 외환위기, 2000년대 닷컴 버블과 911, 엔론사태와 서브프라임, 2010년대 유럽발 디폴트 사태, 그리고 2020년대를 시작하자 닥친 COVID 사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위기를 극복했는데 정말 놀랍다 못해 경이롭다.
나이 90에 들어서면서도 코인과 메타버스는 단호히 거부하고, 애플을 과감히 포트폴리오의 핵심으로 올리는 등의 통찰을 보인 그는 코카콜라,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 자신의 원칙을 충족시키는 주식에는 30년이상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꾸준함은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보기에는 너무 위인전 속 이야기, 다른 차원의 이야기 같다. 좀 현실적인 이야기를 살펴보면 어떨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새해 결심이나 수시 계획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며 이 때 '시작은 반이다'라는 말은 보편적 진리로 통용된다. 일단 결심하면 사람은 관성대로 갈 것이므로 이렇게 시도를 늘리는 전략은 현실속에서 많이 추구된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목표금액을 위해 재테크에 돌입한다. 시작은 그렇다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 텔레스가 'Well begun is half done.'이라고 했을 정도로 어떤 일을 시작할때의 부담을 낮춰주고 실제 효과를 촉진하는 효과로 자주 사용되었다. 그런데 고대 중국과 로마 시대에도 새해 결심을 했다는 문헌이 있을 정도로 인류는 변화를 위한 결심을 수천년째 계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습관을 갖추기가 쉽지 않은것 같다.
중소기업벤처부에 따르면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기 위해 도전하는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성공확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하며, 5년 생존율도 28.5%로 낮다. 시작을 했지만 생존율이 반은 커녕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큰 기업은 좀 다르지 않을까?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로 유명한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의 대표로 이야기했던 11개 기업 중 8개 기업이 망하는 것을 보고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How the mighty fall'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개인의 경우도 비슷해서 다이어트 요요 사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재테크도 마찬가지다. 나심 탈레브가 '행운에 속지마라'에서 지적한 것 처럼 '생존 편향'이 작용해 일부 소수의 영웅 스토리에 혹할 수 있지만, 원칙으로 오래 가는 부자는 찾기 어렵다.
불확실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어렵다. 오늘의 과업으로 지친 몸과 마음이, 내일 해야 할 일이, 그리고 다가오는 다른 하고 싶은 이벤트들이 정말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삶에 자리잡게 하기를 거부한다. 영어공부도, 운동도 잠깐 뿐이다. 혹은 영어공부나 운동을 제법 오래 한 사람들도 업무나 인간관계에서는 그런 꾸준한 향상을 적용하지 못하곤 한다. 사업에서도 기존의 비결이 내일의 장애가 되며 조직 부채로 서서히 세대교체가 이루어진다. 어쩌면 이것은 자연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시작을 지속으로 이어가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방송인 이상용씨는 과거 MBC의 병영 위문 프로그램인 우정의 무대 진행자로 장기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그는 가망이 없어 생매장 당할 정도의 미숙아로 태어났고, 5살까지 누워있다가 6세에 겨우 걷기 시작했으며 어릴때 아버지가 매일 학교까지 가방을 들고 가줘야 할 정도로 허약했지만 매일 운동을 하며 건강을 키웠고 고등학교 진학당시 드디어 '평범한' 아이들 수준의 체력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보디빌딩을 시작해서 고3 시기엔 '미스터 대전고등학교'를 수상했고, 근육이 소문나 주먹 써클 회장을 맡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재학 당시 살인적인 체력이 필요한 고려대학교의 응원단장을 맡기도 하고, 대학 보디빌딩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다양한 사회경험 끝에 진행자로 진로를 잡은 그는 밤무대에 출연하지 않았고, 인지도가 없었으니 CF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유일한 소득원이 출연료였고 이것으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곳에서 불러줘야 하는데 키 크고 잘생긴 사회자와 경쟁을 이기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매월 50권 가량을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음담패설만 3만개 이상 메모하며 현장에 강한 방송인이 되려고 노력했고, 행사 한 번 할때마다 200개씩을 특별히 추려가며 매 회차의 방송을 준비했다. 그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행사에 제일 먼저 달려가며 성실히 하루하루를 임했고 비정규직 스탭으로 6개월간 일하다가 그를 눈여겨본 PD에게 'MC가 부친상을 당했는데 네가 진행할 수 있어?'란 말에 밤새 대본을 외워 다음날 성공적으로 진행하며 드디어 기회를 잡는다.
1944년생인 그는 꾸준한 활동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얼마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삶의 비결을 밝혔다. '매일 역기를 들었다. 70대 이후로는 힘이 들어서 요즘은 40kg짜리를 매일 700개씩 하고 있다. 50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2시간 운동을 했더니 저절로 건강이 유지되었다. 그리고 지난 50년간 단 한 번도 방송사고도 지각도 낸 적이 없다. 스케줄 전날 일기예보에서 눈이 올수도 있다고 하면 전날 밤에라도 가서 근처에서 묵었다. 그리고 지금도 일주일에 4-5권 정도는 책을 읽는다.'
꾸준함이란 이런것이다. 시작보다 지속이 훨씬 더 특별하다. 시작의 뒤에 시도란 이름으로 숨지 말자. 프로는 결과로 이야기하고, 수많은 실패로 배움을 쌓아가며 그 곳에 다가간다. 쉬지 않고 꾸준히.
#손종수
복리의 신봉자 워런 버핏은 '1)돈을 잃지 말라 2)첫 번째 원칙을 잊지 말라’라는 두 가지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런데 원칙의 간결함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유지'했다는 측면이 그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는 1930년 생이어서 70년대 석유파동, 80년대 블랙먼데이, 90년대 걸프전쟁과 외환위기, 2000년대 닷컴 버블과 911, 엔론사태와 서브프라임, 2010년대 유럽발 디폴트 사태, 그리고 2020년대를 시작하자 닥친 COVID 사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위기를 극복했는데 정말 놀랍다 못해 경이롭다.
나이 90에 들어서면서도 코인과 메타버스는 단호히 거부하고, 애플을 과감히 포트폴리오의 핵심으로 올리는 등의 통찰을 보인 그는 코카콜라,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 자신의 원칙을 충족시키는 주식에는 30년이상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꾸준함은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보기에는 너무 위인전 속 이야기, 다른 차원의 이야기 같다. 좀 현실적인 이야기를 살펴보면 어떨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새해 결심이나 수시 계획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며 이 때 '시작은 반이다'라는 말은 보편적 진리로 통용된다. 일단 결심하면 사람은 관성대로 갈 것이므로 이렇게 시도를 늘리는 전략은 현실속에서 많이 추구된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목표금액을 위해 재테크에 돌입한다. 시작은 그렇다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 텔레스가 'Well begun is half done.'이라고 했을 정도로 어떤 일을 시작할때의 부담을 낮춰주고 실제 효과를 촉진하는 효과로 자주 사용되었다. 그런데 고대 중국과 로마 시대에도 새해 결심을 했다는 문헌이 있을 정도로 인류는 변화를 위한 결심을 수천년째 계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습관을 갖추기가 쉽지 않은것 같다.
중소기업벤처부에 따르면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기 위해 도전하는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성공확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하며, 5년 생존율도 28.5%로 낮다. 시작을 했지만 생존율이 반은 커녕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큰 기업은 좀 다르지 않을까?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로 유명한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의 대표로 이야기했던 11개 기업 중 8개 기업이 망하는 것을 보고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How the mighty fall'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개인의 경우도 비슷해서 다이어트 요요 사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재테크도 마찬가지다. 나심 탈레브가 '행운에 속지마라'에서 지적한 것 처럼 '생존 편향'이 작용해 일부 소수의 영웅 스토리에 혹할 수 있지만, 원칙으로 오래 가는 부자는 찾기 어렵다.
불확실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어렵다. 오늘의 과업으로 지친 몸과 마음이, 내일 해야 할 일이, 그리고 다가오는 다른 하고 싶은 이벤트들이 정말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삶에 자리잡게 하기를 거부한다. 영어공부도, 운동도 잠깐 뿐이다. 혹은 영어공부나 운동을 제법 오래 한 사람들도 업무나 인간관계에서는 그런 꾸준한 향상을 적용하지 못하곤 한다. 사업에서도 기존의 비결이 내일의 장애가 되며 조직 부채로 서서히 세대교체가 이루어진다. 어쩌면 이것은 자연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시작을 지속으로 이어가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방송인 이상용씨는 과거 MBC의 병영 위문 프로그램인 우정의 무대 진행자로 장기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그는 가망이 없어 생매장 당할 정도의 미숙아로 태어났고, 5살까지 누워있다가 6세에 겨우 걷기 시작했으며 어릴때 아버지가 매일 학교까지 가방을 들고 가줘야 할 정도로 허약했지만 매일 운동을 하며 건강을 키웠고 고등학교 진학당시 드디어 '평범한' 아이들 수준의 체력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보디빌딩을 시작해서 고3 시기엔 '미스터 대전고등학교'를 수상했고, 근육이 소문나 주먹 써클 회장을 맡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재학 당시 살인적인 체력이 필요한 고려대학교의 응원단장을 맡기도 하고, 대학 보디빌딩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다양한 사회경험 끝에 진행자로 진로를 잡은 그는 밤무대에 출연하지 않았고, 인지도가 없었으니 CF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유일한 소득원이 출연료였고 이것으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곳에서 불러줘야 하는데 키 크고 잘생긴 사회자와 경쟁을 이기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매월 50권 가량을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음담패설만 3만개 이상 메모하며 현장에 강한 방송인이 되려고 노력했고, 행사 한 번 할때마다 200개씩을 특별히 추려가며 매 회차의 방송을 준비했다. 그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행사에 제일 먼저 달려가며 성실히 하루하루를 임했고 비정규직 스탭으로 6개월간 일하다가 그를 눈여겨본 PD에게 'MC가 부친상을 당했는데 네가 진행할 수 있어?'란 말에 밤새 대본을 외워 다음날 성공적으로 진행하며 드디어 기회를 잡는다.
1944년생인 그는 꾸준한 활동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얼마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삶의 비결을 밝혔다. '매일 역기를 들었다. 70대 이후로는 힘이 들어서 요즘은 40kg짜리를 매일 700개씩 하고 있다. 50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2시간 운동을 했더니 저절로 건강이 유지되었다. 그리고 지난 50년간 단 한 번도 방송사고도 지각도 낸 적이 없다. 스케줄 전날 일기예보에서 눈이 올수도 있다고 하면 전날 밤에라도 가서 근처에서 묵었다. 그리고 지금도 일주일에 4-5권 정도는 책을 읽는다.'
꾸준함이란 이런것이다. 시작보다 지속이 훨씬 더 특별하다. 시작의 뒤에 시도란 이름으로 숨지 말자. 프로는 결과로 이야기하고, 수많은 실패로 배움을 쌓아가며 그 곳에 다가간다. 쉬지 않고 꾸준히.
#손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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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콘텐츠, 왜 생존의 기로인가
우리가 IMF 체제 이후 00년대 중반 중진국 함정에서 빠져나오려 노력하면서 전 국민의 머릿속에 각인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바로 "로열티가 살길이다." 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한국이 선진국들의 OEM 생산기지로서 경제 발전을 이룩한 탓이 큰데, 그 전까지는 서방 선진국들의 인건비 절감 니즈를 우리나라가 잘 캐치하여 그 혜택을 얻었으나, 그 기간은 한국의 인건비 수준이 선진국 기업들의 원하는 영업이익률의 달성에 부합할 때까지만이라는 유한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한국은 00년대 이후 원천기술에 대단히 집착하는 국가가 되었고, 다행히 그 이후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자체적인 기술을 다수 개발하여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추게 되긴 했다. 그러나 제조업의 경우 여기서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제 기술 수준 자체의 경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콘텐츠 분야의 지적재산권 (Intellectual Property, IP) 경쟁은 앞서 짧게 설명한 이런 특성들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콘텐츠 IP의 수익 창출은 주로 아래와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 우선 특정한 캐릭터 또는 이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나 세계관 전체를 하나의 지적재산으로써 소비자들에게 공급한다. 그리고 이것이 흥행을 거두게 되면 2차적으로 뛰어드는 시장이 바로 라이선스, 즉 로열티 시장이다.
로열티 시장이 왜 2차로 갈 수밖에 없는 시장인가 하면, 결국 기술이 됐든 콘텐츠가 됐든 시장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아무도 그것을 면허로 취득하여 생산활동을 수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로열티 시장은 그 수입의 규모가 크다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IP나 기술의 상용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꾸준한 제작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로열티가 중요하다' 라는 아젠다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이고, 그 이면에 있어 더욱 핵심적인 것은 어떻게 로열티를 계속 벌어들일 수 있게끔 IP와 기술의 생명력을 유지하는가이다. 여기서 우리는 결국 IP의 유지보수와 개발이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함을 논리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본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넷플릭스의 투자 확대는 과연 한국 콘텐츠의 발전에 긍정적인가? 많은 분들은 넷플릭스의 투자로 인한 자본의 확충으로 제작 환경이 개선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더욱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이는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영상 콘텐츠의 '제작 환경' 만이 개선된다고 해서 그것이 IP 의 생명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본디 콘텐츠는 흥행 산업으로써 그 흥행의 결과에 따라 수익성이 오가는 리스크를 지닌다. 그러나 OTT 사업자들은 총액제를 도입함으로써 그 리스크를 그들 스스로 혼자서 부담한다. 그 대신 당연히 반대급부도 있다. 생성된 IP는 OTT 사업자가 가져가는 식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여기서 당연히 '로열티 시장' 이라는 2차 시장은 OTT 사업자가 가져간다. 한국은 1차든 2차든 그저 OTT의 하청이 될 뿐이다. 제작사는 리스크를 덜어주는 대신 IP 사용권을 넘겨주는 식으로 제작하청이 되는 것이고, IP 사용자들은 로열티 시장에서 OTT의 하청이 된다. 여기서 IP 사용자들의 원가 부담은 그들 스스로가 지므로, OTT 사업자들은 원가 없는 수익을 수취한다. 이것이 바로 로열티의 힘이다.
그러므로, OTT는 특정 IP가 터지면 그 IP의 생명력을 지속 유지하면서 로열티 수익을 수취해야 하는 필요가 생긴다. 때문에 IP 홀더의 입장에서 넷플릭스는 제작자들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닌, 자사의 IP 생명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제작을 지속하게끔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벌써 제작자들의 창의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제조업에서 중기들이 대부분 대기업의 협력사로 수직계열화되어 존재하고, 이 때문에 중기의 자체적인 수출기여도가 타 선진국 대비 낮은 것과 동일한 문제이다. 중기가 자체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힘을 가질 어떤 기술의 개발이나 자본의 투입 자체를 이러한 대기업 중심 수직계열화가 일정 부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레거시 방송사들보다 낫다." 라는 제작자들의 외침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이 관점에서 필요한 것은 거대 해외 IP 홀더의 한국 투자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IP가 다수 탄생하고 이러한 IP 를 선진적 관점에서 관리 발전시킬 수 있는 토종 IP 홀더다. 이들이 대등하게 글로벌 OTT 들과 경쟁하는 것이 더욱 토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탑다운 관점에서 시장의 콘텐츠 니즈를 파악하고 IP 를 발전시킬 수 있는 IP 홀더가 우리나라에는 그냥 없다. 네이버 웹툰은 그냥 일진물 원툴이었다가 웹소 기반 양산형 콘텐츠 중심으로 변모했고, 유튜버들의 소속사인 샌드박스 등은 이러한 관점이 없이 소속 유튜버의 셀러브리티성 활용에만 골몰하다가 경영 위기를 맞았다. 다른 MCN들도 그리 사정이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안다.
지적재산은 만들고 유지시키기가 정말 간단치가 않다. 단위당 수익 창출률이 가장 높은 티켓 시장의 경우 결국 장편 극장판이 핵심인데, 이러한 콘텐츠를 짜내려면 주인공과 빌런의 캐릭터성부터 시작해서 각본의 세밀함과 연출의 힘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모두 투입이 되어야 하고 이것이 뒤섞인 칵테일이 바로 IP 인 것이다. 이러한 IP 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는 사업자가 한국에는 부족했기 때문에, 한국 웹툰이 세계적으로 유행을 한다지만 결국 그 본진은 양산형으로 차츰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해외의 거대 자본이 투입되면 한동안은 제작 환경이 일신되어 제작자들이 과거의 문제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결국 '누가 IP 홀더인가' 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이는 결국 '한국 콘텐츠' 는 차츰 동력을 잃어갈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런 작품이 또 나오려면 OTT가 거액을 투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콘텐츠 산업에서의 경제적 해자는 결국 IP의 개발 역량 확대와 제작 환경 개선이라는 쌍발 엔진이 모두 기능을 해야하는 것이지, 누가 돈을 한묶음 들고 와서 "자 투자해 주마!" 한다고 해서 해자가 뙇 하고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HyunsungKim
우리가 IMF 체제 이후 00년대 중반 중진국 함정에서 빠져나오려 노력하면서 전 국민의 머릿속에 각인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바로 "로열티가 살길이다." 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한국이 선진국들의 OEM 생산기지로서 경제 발전을 이룩한 탓이 큰데, 그 전까지는 서방 선진국들의 인건비 절감 니즈를 우리나라가 잘 캐치하여 그 혜택을 얻었으나, 그 기간은 한국의 인건비 수준이 선진국 기업들의 원하는 영업이익률의 달성에 부합할 때까지만이라는 유한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한국은 00년대 이후 원천기술에 대단히 집착하는 국가가 되었고, 다행히 그 이후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자체적인 기술을 다수 개발하여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추게 되긴 했다. 그러나 제조업의 경우 여기서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제 기술 수준 자체의 경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콘텐츠 분야의 지적재산권 (Intellectual Property, IP) 경쟁은 앞서 짧게 설명한 이런 특성들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콘텐츠 IP의 수익 창출은 주로 아래와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 우선 특정한 캐릭터 또는 이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나 세계관 전체를 하나의 지적재산으로써 소비자들에게 공급한다. 그리고 이것이 흥행을 거두게 되면 2차적으로 뛰어드는 시장이 바로 라이선스, 즉 로열티 시장이다.
로열티 시장이 왜 2차로 갈 수밖에 없는 시장인가 하면, 결국 기술이 됐든 콘텐츠가 됐든 시장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아무도 그것을 면허로 취득하여 생산활동을 수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로열티 시장은 그 수입의 규모가 크다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IP나 기술의 상용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꾸준한 제작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로열티가 중요하다' 라는 아젠다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이고, 그 이면에 있어 더욱 핵심적인 것은 어떻게 로열티를 계속 벌어들일 수 있게끔 IP와 기술의 생명력을 유지하는가이다. 여기서 우리는 결국 IP의 유지보수와 개발이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함을 논리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본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넷플릭스의 투자 확대는 과연 한국 콘텐츠의 발전에 긍정적인가? 많은 분들은 넷플릭스의 투자로 인한 자본의 확충으로 제작 환경이 개선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더욱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이는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영상 콘텐츠의 '제작 환경' 만이 개선된다고 해서 그것이 IP 의 생명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본디 콘텐츠는 흥행 산업으로써 그 흥행의 결과에 따라 수익성이 오가는 리스크를 지닌다. 그러나 OTT 사업자들은 총액제를 도입함으로써 그 리스크를 그들 스스로 혼자서 부담한다. 그 대신 당연히 반대급부도 있다. 생성된 IP는 OTT 사업자가 가져가는 식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여기서 당연히 '로열티 시장' 이라는 2차 시장은 OTT 사업자가 가져간다. 한국은 1차든 2차든 그저 OTT의 하청이 될 뿐이다. 제작사는 리스크를 덜어주는 대신 IP 사용권을 넘겨주는 식으로 제작하청이 되는 것이고, IP 사용자들은 로열티 시장에서 OTT의 하청이 된다. 여기서 IP 사용자들의 원가 부담은 그들 스스로가 지므로, OTT 사업자들은 원가 없는 수익을 수취한다. 이것이 바로 로열티의 힘이다.
그러므로, OTT는 특정 IP가 터지면 그 IP의 생명력을 지속 유지하면서 로열티 수익을 수취해야 하는 필요가 생긴다. 때문에 IP 홀더의 입장에서 넷플릭스는 제작자들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닌, 자사의 IP 생명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제작을 지속하게끔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벌써 제작자들의 창의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제조업에서 중기들이 대부분 대기업의 협력사로 수직계열화되어 존재하고, 이 때문에 중기의 자체적인 수출기여도가 타 선진국 대비 낮은 것과 동일한 문제이다. 중기가 자체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힘을 가질 어떤 기술의 개발이나 자본의 투입 자체를 이러한 대기업 중심 수직계열화가 일정 부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레거시 방송사들보다 낫다." 라는 제작자들의 외침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이 관점에서 필요한 것은 거대 해외 IP 홀더의 한국 투자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IP가 다수 탄생하고 이러한 IP 를 선진적 관점에서 관리 발전시킬 수 있는 토종 IP 홀더다. 이들이 대등하게 글로벌 OTT 들과 경쟁하는 것이 더욱 토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탑다운 관점에서 시장의 콘텐츠 니즈를 파악하고 IP 를 발전시킬 수 있는 IP 홀더가 우리나라에는 그냥 없다. 네이버 웹툰은 그냥 일진물 원툴이었다가 웹소 기반 양산형 콘텐츠 중심으로 변모했고, 유튜버들의 소속사인 샌드박스 등은 이러한 관점이 없이 소속 유튜버의 셀러브리티성 활용에만 골몰하다가 경영 위기를 맞았다. 다른 MCN들도 그리 사정이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안다.
지적재산은 만들고 유지시키기가 정말 간단치가 않다. 단위당 수익 창출률이 가장 높은 티켓 시장의 경우 결국 장편 극장판이 핵심인데, 이러한 콘텐츠를 짜내려면 주인공과 빌런의 캐릭터성부터 시작해서 각본의 세밀함과 연출의 힘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모두 투입이 되어야 하고 이것이 뒤섞인 칵테일이 바로 IP 인 것이다. 이러한 IP 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는 사업자가 한국에는 부족했기 때문에, 한국 웹툰이 세계적으로 유행을 한다지만 결국 그 본진은 양산형으로 차츰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해외의 거대 자본이 투입되면 한동안은 제작 환경이 일신되어 제작자들이 과거의 문제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결국 '누가 IP 홀더인가' 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이는 결국 '한국 콘텐츠' 는 차츰 동력을 잃어갈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런 작품이 또 나오려면 OTT가 거액을 투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콘텐츠 산업에서의 경제적 해자는 결국 IP의 개발 역량 확대와 제작 환경 개선이라는 쌍발 엔진이 모두 기능을 해야하는 것이지, 누가 돈을 한묶음 들고 와서 "자 투자해 주마!" 한다고 해서 해자가 뙇 하고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HyunsungKim
👍9❤3🤔2
< 나의 애플페이 협상기>
애플페이 한국 서비스 개시를 애플이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반가운 일이다. 아울러 그동안 NDA로 말 하지 못했던 애플과의 애플페이 협상 경험을 이제는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간의 과정을 실명만은 제외하고 모두 이야기 하려고 한다.
오래 전 부터 모바일 페이먼트는 전문 분야이자 개인적 소망이었다. 2000년 모네타 프로젝트 이후 모바일 페이먼트 일을 그만두기는 했지만 아쉬움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2018년 우리은행 CDO로 취임한 이후 시도한 일 중 하나가 애플페이였다. 해당 시점에 애플코리아에는 뚜렷한 담당자도 없었기에 접근 경로부터 마땅치 않았다. 고민 끝에 애플페이를 총괄하던 애플 본사의 Jennifer Bailey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솔직히 답장이 올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답장이 도착한것이다. 의례적인 답장이 아니라 애플저팬의 에플페이팀에게 검토 해 보라고 지시했다는 나름 적극성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애플저팬의 애플페이팀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애플저팬팀과의 업무협의 및 협상은 그 후 계속 이어졌다. 때로는 우리은행에서 때로는 애플코리아 사무실에서 회의가 계속되었다. 내가 직접 애플저팬 오피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애플저팬의 애플페이팀은 실무적인 검토 특히 한국내 서비스 적용을 위한 technical survey에 집중했다. 우리나라 발급사들의 토큰 서버 준비 상황이라던가 로컬카드 운영 방식 그리고 NFC 단말의 스펙과 보급 통계등을 요구했고 나와 우리 팀은 해당 정보를 지체없이 제공했다. 애플저팬 애플페이팀 직원들은 대면 회의, 이메일로 수 많은 질문을 해왔다. 2020년 판데믹 이후에도 논의는 화상회의 등으로 지속되었고 애플재펜의 애플페이 팀 헤드는 중국으로 릴로케이션 되었으며 드디어 애플코리아에 애플페이 담당자가 채용되었다.
테크니컬 세션이 지속되는 가운데 나는 애플페이 리더에게 비즈니스 제안을 했다. 나는 애플페이를 고객 확대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당연히 한시적이나마 애플페이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얻어내고자 했다. 계속된 정보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대한 것도 그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플페이 독점 서비스를 얻어내기 위해서 다른 제안도 여러가지 했다. 카드 발급 비용을 애플의 시장 확대를 위한 subsidizing 재원 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 뿐만 아니라 애플 에듀케이션 센터의 설립, corporate deal 등 다양한 협상안을 제시했다. 협상 과정에서 애플 내부 조직간 duty segregation이 발견되었지만 일련의 제안이 어떤 단계에서는 분명히 모여들 것이라 생각했다. 2019년에는 비밀리에 애플의 Sales VP가 방문했다. CVN70 Carl Vinson에서 정보장교로 근무할 당시 한반도 동해에서 작전을 했었다는 그에게 다시 한 번 애플페이 독점적 서비스를 어필했다. 물론 답변은 원론적 수준이었다.
어찌되었던 이 협상은 결론을 이루지 못하였고 내가 2022년 2월 우리금융/우리은행 CDO에서 퇴임하면서 애플과의 협상은 중단되었다.
오랜 시간동안 애플과 협상하며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애플 역시 iOS 개발 요구를 정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 세계의 각종 요청사항을 iOS 업데이트에 반영하기 위해 각 나라 각 팀들이 나름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중국 한국 등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 크게 확산된 바코드 기반의 결제 시스템에 대해 애플의 입장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사석에서 느낀바에 따르면 애플은 바코드 기반의 결제시스템이 usage profile이나 security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에는 이러한 입장에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애플페이가 수수료 때문에 도입지 지연되고 있다는 주장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신용카드 MDR의 국가별 특수성을 Visa나 MasterCard가 모르지 않을 뿐더러 그들이 결코 국내 발급사들에게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것만도 아닌 까닭이다.
애플은 애플페이가 특정 카드에만 종속되는 것을 경계하였다. 한국 신용카드 시장의 특성, 가맹점 단말기 보급의 관행, 경쟁하는 간편결제 사업자들의 가맹점 확보 전략 등을 설명하며 한시적이나마 독점적인 권한이 있다면 오히려 ‘대나무 쪼개기’ 전술이 될 수 있다고 수 없이 설득을 했지만 쉽사리 납득하지는 않았다. 애플 단말기를 소지한 모든 고객에게 동일한 접근성을 제공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애플페이 현대카드 독점’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내가 고개를 갸우뚱 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부정할 수 없는 애플 팬보이로써 애플페이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지루한 협상이 결실을 맺지 못 해 아쉽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상 나의 또다른 실패기였다.
#황원철
애플페이 한국 서비스 개시를 애플이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반가운 일이다. 아울러 그동안 NDA로 말 하지 못했던 애플과의 애플페이 협상 경험을 이제는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간의 과정을 실명만은 제외하고 모두 이야기 하려고 한다.
오래 전 부터 모바일 페이먼트는 전문 분야이자 개인적 소망이었다. 2000년 모네타 프로젝트 이후 모바일 페이먼트 일을 그만두기는 했지만 아쉬움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2018년 우리은행 CDO로 취임한 이후 시도한 일 중 하나가 애플페이였다. 해당 시점에 애플코리아에는 뚜렷한 담당자도 없었기에 접근 경로부터 마땅치 않았다. 고민 끝에 애플페이를 총괄하던 애플 본사의 Jennifer Bailey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솔직히 답장이 올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답장이 도착한것이다. 의례적인 답장이 아니라 애플저팬의 에플페이팀에게 검토 해 보라고 지시했다는 나름 적극성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애플저팬의 애플페이팀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애플저팬팀과의 업무협의 및 협상은 그 후 계속 이어졌다. 때로는 우리은행에서 때로는 애플코리아 사무실에서 회의가 계속되었다. 내가 직접 애플저팬 오피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애플저팬의 애플페이팀은 실무적인 검토 특히 한국내 서비스 적용을 위한 technical survey에 집중했다. 우리나라 발급사들의 토큰 서버 준비 상황이라던가 로컬카드 운영 방식 그리고 NFC 단말의 스펙과 보급 통계등을 요구했고 나와 우리 팀은 해당 정보를 지체없이 제공했다. 애플저팬 애플페이팀 직원들은 대면 회의, 이메일로 수 많은 질문을 해왔다. 2020년 판데믹 이후에도 논의는 화상회의 등으로 지속되었고 애플재펜의 애플페이 팀 헤드는 중국으로 릴로케이션 되었으며 드디어 애플코리아에 애플페이 담당자가 채용되었다.
테크니컬 세션이 지속되는 가운데 나는 애플페이 리더에게 비즈니스 제안을 했다. 나는 애플페이를 고객 확대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당연히 한시적이나마 애플페이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얻어내고자 했다. 계속된 정보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대한 것도 그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플페이 독점 서비스를 얻어내기 위해서 다른 제안도 여러가지 했다. 카드 발급 비용을 애플의 시장 확대를 위한 subsidizing 재원 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 뿐만 아니라 애플 에듀케이션 센터의 설립, corporate deal 등 다양한 협상안을 제시했다. 협상 과정에서 애플 내부 조직간 duty segregation이 발견되었지만 일련의 제안이 어떤 단계에서는 분명히 모여들 것이라 생각했다. 2019년에는 비밀리에 애플의 Sales VP가 방문했다. CVN70 Carl Vinson에서 정보장교로 근무할 당시 한반도 동해에서 작전을 했었다는 그에게 다시 한 번 애플페이 독점적 서비스를 어필했다. 물론 답변은 원론적 수준이었다.
어찌되었던 이 협상은 결론을 이루지 못하였고 내가 2022년 2월 우리금융/우리은행 CDO에서 퇴임하면서 애플과의 협상은 중단되었다.
오랜 시간동안 애플과 협상하며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애플 역시 iOS 개발 요구를 정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 세계의 각종 요청사항을 iOS 업데이트에 반영하기 위해 각 나라 각 팀들이 나름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중국 한국 등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 크게 확산된 바코드 기반의 결제 시스템에 대해 애플의 입장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사석에서 느낀바에 따르면 애플은 바코드 기반의 결제시스템이 usage profile이나 security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에는 이러한 입장에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애플페이가 수수료 때문에 도입지 지연되고 있다는 주장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신용카드 MDR의 국가별 특수성을 Visa나 MasterCard가 모르지 않을 뿐더러 그들이 결코 국내 발급사들에게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것만도 아닌 까닭이다.
애플은 애플페이가 특정 카드에만 종속되는 것을 경계하였다. 한국 신용카드 시장의 특성, 가맹점 단말기 보급의 관행, 경쟁하는 간편결제 사업자들의 가맹점 확보 전략 등을 설명하며 한시적이나마 독점적인 권한이 있다면 오히려 ‘대나무 쪼개기’ 전술이 될 수 있다고 수 없이 설득을 했지만 쉽사리 납득하지는 않았다. 애플 단말기를 소지한 모든 고객에게 동일한 접근성을 제공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애플페이 현대카드 독점’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내가 고개를 갸우뚱 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부정할 수 없는 애플 팬보이로써 애플페이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지루한 협상이 결실을 맺지 못 해 아쉽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상 나의 또다른 실패기였다.
#황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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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들에게 자주 해주는 말 중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매우 다른 말이 두 가지 정도 있다.
1. 신규 시장에서 2등을 노려라.
2. 전근대적 거래 관행이 있는 곳에 가서 산업화를 시켜라.
신규 시장 2등의 의미는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내놓는 것보다 남이 먼저 내놓았지만 아직 부실한 제품/서비스를 확실히 개선한 제품을 나중에 내놓으라는 뜻이다. 없던 컨셉의 물건 내놓는 건 엄청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지만 있는 제품 개선하는 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할 수 있다. 이 모델의 최강자가 애플인 건 다들 알테고.
시장 혁신을 한다고 하면 '없던 물건'을 떠올리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사실 없던 물건은 그저 신기할 수는 있지만 시장에 큰 혁신을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품 자체도 부실할 위험성이 많고, 시장에서도 이를 수용할 준비가 안되어 있기도 하다. 2등은 이런 위험성을 피해갈 수 있다. First to market이 혁신이 아니라, mass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혁신이다.
(네이버나 배민 모두 first to market 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First mover disadvantage 라는 말이 있을까.)
전근대적 거래 관행이란 '계약 기반'이 아니거나, '중소규모의 업체들이 인맥 기반의 장사'를 '좁은 지역과 범위에서' 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국내 유통업의 발전은 동네 슈퍼와 전통 시장을 대형 마트와 편의점으로 대체하는 방식이었고, 영화관 사업도 지역별 단관 형태의 영화관을 멀티플렉스와 온라인 기반 예약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방식이었다. 배민도 마찬가지고.
물론 지금까지 이런 형태의 거래가 남아 있는 곳들은 변호사나 의사, 택시처럼 직역의 서비스에 대해 법적인 보호가 이중삼중으로 되어 있는 곳들이 대부분 이지만, 이들 역시 결국은 기업 중심으로 서비스되는 산업화가 될 것이다. (가령 변호사업은 결국 일부 유명한 로펌의 송무 중심의 초고가 서비스와 AI 기반의 지식 서비스에 가까운 저렴하지만 다수의 사용자가 있는 기업화 영역으로 나뉘게 될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변호사들이 먼저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보다는 미국에서 생성 AI 가 일정 수준 이상의 수준에 올라오면 당연히 법무나 의료 등 특정 도메인에서의 전문성과 저렴한 비용을 결합한 '법무 기업', '의료 기업' 등이 될 것이고, 한국 시장에도 강력하게 개방을 요구하게 될거다. 미국의 로펌 한국 진출이라면 그래도 막을 여지가 많지만, 기업화된 IT 서비스라면 막기 매우 곤란할 수밖에 없다. MS의 빙이 미국에 서버를 두고 한국의 판례와 법률 DB를 구축한 다음에 기초 법률 서비스를 무료로 한다면 이걸 막을 방법이 있을까? 예전의 영화계 스크린쿼터 철폐와 같은 식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이야기.) 물론 로톡이나 타다처럼 계속해서 실패 사례들이 쌓이겠지만, 어차피 댐이라는 건 한번 구멍 뚫리면 끝나는 것이고, 미국 애들은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남에게 강요하는데 매우 능하다.
잘 뒤져보면 국내엔 여전히 이런 식의 '아름아름', '관행 기반'의 일들이 남아 있다. 결국은 냉정한 계약 기반의 일들로 대체될 것이고, 사업을 시작할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복연
1. 신규 시장에서 2등을 노려라.
2. 전근대적 거래 관행이 있는 곳에 가서 산업화를 시켜라.
신규 시장 2등의 의미는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내놓는 것보다 남이 먼저 내놓았지만 아직 부실한 제품/서비스를 확실히 개선한 제품을 나중에 내놓으라는 뜻이다. 없던 컨셉의 물건 내놓는 건 엄청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지만 있는 제품 개선하는 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할 수 있다. 이 모델의 최강자가 애플인 건 다들 알테고.
시장 혁신을 한다고 하면 '없던 물건'을 떠올리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사실 없던 물건은 그저 신기할 수는 있지만 시장에 큰 혁신을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품 자체도 부실할 위험성이 많고, 시장에서도 이를 수용할 준비가 안되어 있기도 하다. 2등은 이런 위험성을 피해갈 수 있다. First to market이 혁신이 아니라, mass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혁신이다.
(네이버나 배민 모두 first to market 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First mover disadvantage 라는 말이 있을까.)
전근대적 거래 관행이란 '계약 기반'이 아니거나, '중소규모의 업체들이 인맥 기반의 장사'를 '좁은 지역과 범위에서' 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국내 유통업의 발전은 동네 슈퍼와 전통 시장을 대형 마트와 편의점으로 대체하는 방식이었고, 영화관 사업도 지역별 단관 형태의 영화관을 멀티플렉스와 온라인 기반 예약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방식이었다. 배민도 마찬가지고.
물론 지금까지 이런 형태의 거래가 남아 있는 곳들은 변호사나 의사, 택시처럼 직역의 서비스에 대해 법적인 보호가 이중삼중으로 되어 있는 곳들이 대부분 이지만, 이들 역시 결국은 기업 중심으로 서비스되는 산업화가 될 것이다. (가령 변호사업은 결국 일부 유명한 로펌의 송무 중심의 초고가 서비스와 AI 기반의 지식 서비스에 가까운 저렴하지만 다수의 사용자가 있는 기업화 영역으로 나뉘게 될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변호사들이 먼저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보다는 미국에서 생성 AI 가 일정 수준 이상의 수준에 올라오면 당연히 법무나 의료 등 특정 도메인에서의 전문성과 저렴한 비용을 결합한 '법무 기업', '의료 기업' 등이 될 것이고, 한국 시장에도 강력하게 개방을 요구하게 될거다. 미국의 로펌 한국 진출이라면 그래도 막을 여지가 많지만, 기업화된 IT 서비스라면 막기 매우 곤란할 수밖에 없다. MS의 빙이 미국에 서버를 두고 한국의 판례와 법률 DB를 구축한 다음에 기초 법률 서비스를 무료로 한다면 이걸 막을 방법이 있을까? 예전의 영화계 스크린쿼터 철폐와 같은 식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이야기.) 물론 로톡이나 타다처럼 계속해서 실패 사례들이 쌓이겠지만, 어차피 댐이라는 건 한번 구멍 뚫리면 끝나는 것이고, 미국 애들은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남에게 강요하는데 매우 능하다.
잘 뒤져보면 국내엔 여전히 이런 식의 '아름아름', '관행 기반'의 일들이 남아 있다. 결국은 냉정한 계약 기반의 일들로 대체될 것이고, 사업을 시작할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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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언제든 호구가 될수 있다--
최근 주가조작으로 시끄럽다. 한 분이 말한다. "어떻게 저런 말도 안되는 세력에 연예인은 그렇다치고 의사분들 등 똑똑한 사람들이 믿고 투자했을까?"
그러나 아마도 나라도 내가 돈을 1억을 맡겼는데 일주일만에 2억을 만들어주고 직접 내계좌에서 확인하게 한다면, 내가 가진 돈을 점점 더 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도 이런 상황들을 보거나 유사한 투자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카지노 드라마를 보면 최민식이 호구 CEO의 전 재산을 탈탈 털고 파산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비결은 심플하다. vip대접을 해준다. 떼돈 번 사례를 보여준다. 초기 승리를 맛보게 한다. 위해주는 척 한다. 점점 더 크게 베팅하게 한다. 드라마를 보는 분들은 다들 "저런 바보같은 호구라니"라고 말하지만 자신들도 그 상황에 가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것이다.
똑똑하고 사회적 지위가 있다는 것과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일치하지 않는다. 특히, 사회적 지위가 높고 욕망이 강한 사람일수록 돈에 대한 욕심이 오히려 더 크기 때문에 빠르게 돈버는 기회에 눈이 뒤집히기 쉬울수도 있다.
대개 사기꾼들이 쓰는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흥미롭게도 꼭대기가 아닌 리더급들 중에는 자신은 사기가 아닌 진짜 좋은 의도로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1)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인다.
- 일반인들은 유명인들이 있으면 안심한다. 저런 높은 지위, 사회적 위치가 있는 사람들이 저런 곳에 참여할 정도라면 믿음직해라고 생각하기에 이들은 최선을 다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이들을 모은다.
- 방법은 복잡하지 않은데 초기 사회적 지위가 있는 분들은 benefit을 주며 부담없이 초대한다. 먼저, 친분이나 sns 등을 활용한다. 초기에는 그냥 부담없이 초대한다. 이후 지분투자의 잇점을 준다든지 방법으로 참여를 이끈다. 이후 서로를 이용한다. A에 가서는 B도 오셨습니다. B에 가서는 A도 여기에 관심있어요. 라는 식으로 활용하여 vip들을 확대한다.
2) 자신이 이를 통해 굉장히 부를 획득했음을 보여주고 자신이 부를 즐기는 모습을 표현한다.
- 자신의 지분, 사무실, 자동차, 취미활동 등을 통해 자신이 부유함을 보여준다.
- 대상들을 매우 럭셔리한 호텔이나 골프장, 요트장 등으로 초대하여 부럽게 만들며 가오를 잡게 해준다.
3) 초기 승리를 맛보게 해준다
- 의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기위해 초기 대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점점 큰 돈을 넣게한다.
이는 주식이든 코인이든 부동산이든 미술투자든 어느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될까?
1) 종종 이런 방식에 참여해서 성공하기 때문이다.
실패한 작전도 있지만 성공한 작전들도 많다. 코인이나 주식사기에 들어가서 크게 성공하고 빠져나온 이들도 많다. 현실세계에서는 악이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2) 자신은 수건돌리기 마지막에는 걸리지 않고 빠져나올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종 똑똑한 이들은 초기에는 몰랐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수익 메카니즘을 알게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수건돌리기 걸리기 직전에 빠져나오자는 생각을 한다.
3) 결국, 인간의 욕심이다.
짧은기간 엄청난 돈을 벌고자하는 것은 대다수 인간의 본성이다. 특히, 귀가 얇고 욕망이 강할수록, 성공경험이 있을수록 빠지기 쉽다.
어떻게 해야할까?
1) 자신은 욕심에 취약한 인간임을 인식한다. 자신이 똑똑한 사람이고 호구가 아니라는 생각을 버린다.
2) 짧은기간 큰 돈을 버는 사업은 대개 피라미드형 사업이거나 수건 돌리기임을 인식한다.
3)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이들이 참여한다고 그것이 보증해주는것이 아님을 이해하라. 사이비종교에도 교수, 법조인, 공무원, 사업가들이 많다.
4) 짧은 기간에 큰 돈을 번다는 것에 가능한 발을 들이지마라. 당신이 사회적 지위가 있다면 더욱 주의하라. 상대는 당신의 이름을 팔고 다닐것이다.
5) 물론, 이런곳에서 당신은 떼돈을 벌수도 있다. 나는 이런 곳에 들어가서 떼돈번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파산을 할수도 있다. 이에 꼭 하고 싶다면 다 잃어도 괜찮을만큼만 하고, 수익이 나면 일단 본전은 따로 챙겨놓고 한다. 그런데 이 정도의 절제심이 있다면 이런 곳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신수정
최근 주가조작으로 시끄럽다. 한 분이 말한다. "어떻게 저런 말도 안되는 세력에 연예인은 그렇다치고 의사분들 등 똑똑한 사람들이 믿고 투자했을까?"
그러나 아마도 나라도 내가 돈을 1억을 맡겼는데 일주일만에 2억을 만들어주고 직접 내계좌에서 확인하게 한다면, 내가 가진 돈을 점점 더 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도 이런 상황들을 보거나 유사한 투자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카지노 드라마를 보면 최민식이 호구 CEO의 전 재산을 탈탈 털고 파산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비결은 심플하다. vip대접을 해준다. 떼돈 번 사례를 보여준다. 초기 승리를 맛보게 한다. 위해주는 척 한다. 점점 더 크게 베팅하게 한다. 드라마를 보는 분들은 다들 "저런 바보같은 호구라니"라고 말하지만 자신들도 그 상황에 가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것이다.
똑똑하고 사회적 지위가 있다는 것과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일치하지 않는다. 특히, 사회적 지위가 높고 욕망이 강한 사람일수록 돈에 대한 욕심이 오히려 더 크기 때문에 빠르게 돈버는 기회에 눈이 뒤집히기 쉬울수도 있다.
대개 사기꾼들이 쓰는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흥미롭게도 꼭대기가 아닌 리더급들 중에는 자신은 사기가 아닌 진짜 좋은 의도로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1)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인다.
- 일반인들은 유명인들이 있으면 안심한다. 저런 높은 지위, 사회적 위치가 있는 사람들이 저런 곳에 참여할 정도라면 믿음직해라고 생각하기에 이들은 최선을 다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이들을 모은다.
- 방법은 복잡하지 않은데 초기 사회적 지위가 있는 분들은 benefit을 주며 부담없이 초대한다. 먼저, 친분이나 sns 등을 활용한다. 초기에는 그냥 부담없이 초대한다. 이후 지분투자의 잇점을 준다든지 방법으로 참여를 이끈다. 이후 서로를 이용한다. A에 가서는 B도 오셨습니다. B에 가서는 A도 여기에 관심있어요. 라는 식으로 활용하여 vip들을 확대한다.
2) 자신이 이를 통해 굉장히 부를 획득했음을 보여주고 자신이 부를 즐기는 모습을 표현한다.
- 자신의 지분, 사무실, 자동차, 취미활동 등을 통해 자신이 부유함을 보여준다.
- 대상들을 매우 럭셔리한 호텔이나 골프장, 요트장 등으로 초대하여 부럽게 만들며 가오를 잡게 해준다.
3) 초기 승리를 맛보게 해준다
- 의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기위해 초기 대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점점 큰 돈을 넣게한다.
이는 주식이든 코인이든 부동산이든 미술투자든 어느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될까?
1) 종종 이런 방식에 참여해서 성공하기 때문이다.
실패한 작전도 있지만 성공한 작전들도 많다. 코인이나 주식사기에 들어가서 크게 성공하고 빠져나온 이들도 많다. 현실세계에서는 악이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2) 자신은 수건돌리기 마지막에는 걸리지 않고 빠져나올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종 똑똑한 이들은 초기에는 몰랐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수익 메카니즘을 알게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수건돌리기 걸리기 직전에 빠져나오자는 생각을 한다.
3) 결국, 인간의 욕심이다.
짧은기간 엄청난 돈을 벌고자하는 것은 대다수 인간의 본성이다. 특히, 귀가 얇고 욕망이 강할수록, 성공경험이 있을수록 빠지기 쉽다.
어떻게 해야할까?
1) 자신은 욕심에 취약한 인간임을 인식한다. 자신이 똑똑한 사람이고 호구가 아니라는 생각을 버린다.
2) 짧은기간 큰 돈을 버는 사업은 대개 피라미드형 사업이거나 수건 돌리기임을 인식한다.
3)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이들이 참여한다고 그것이 보증해주는것이 아님을 이해하라. 사이비종교에도 교수, 법조인, 공무원, 사업가들이 많다.
4) 짧은 기간에 큰 돈을 번다는 것에 가능한 발을 들이지마라. 당신이 사회적 지위가 있다면 더욱 주의하라. 상대는 당신의 이름을 팔고 다닐것이다.
5) 물론, 이런곳에서 당신은 떼돈을 벌수도 있다. 나는 이런 곳에 들어가서 떼돈번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파산을 할수도 있다. 이에 꼭 하고 싶다면 다 잃어도 괜찮을만큼만 하고, 수익이 나면 일단 본전은 따로 챙겨놓고 한다. 그런데 이 정도의 절제심이 있다면 이런 곳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신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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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도 주인을 찾고, 힐튼 호텔도 철거되고, 대우는 이제 정말 한국 기업역사의 뒤안길로.
1997년말 IMF 사태가 터지기 직전, 회광반조(廻光返照, 해가 지기 직전에 일시적으로 햇살이 강하게 비추어 하늘이 잠시 동안 밝아지는 자연 현상)처럼, 대우 역시 여러가지 풍성한 이벤트들을 만들었다.
문인들을 모아 대우 해외공장 시찰도 보내주고, 대학생들 모아 유럽 공장 견학을 보내주기도 했다.
당시 운 좋게 한 자리 낄 기회를 얻어, 영국의 대우 자동차 디자인 연구소, 폴란드의 대우 자동차 (당시 국영 자동차 회사를 인수), 프랑스의 대우전자 전자렌지 생산공장 등을 견학.
대우 깃발 아래 현지인들을 고용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고, 국뽕이 차 올라 무척 감개무량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도 그 이후, 내가 드라마 '미생'같은 종합상사를 직장으로 선택하게 된 모티브가 된 듯. 다행히(?) 대우를 살짝 피해 다른 곳으로 가긴 했지만, 거기서도 제일 무서운 경쟁사는 (주)대우 (현 포스코 인터내셔널)이었다. 우리는 조직력으로 영업을 하는 반면, 대우맨은 독고다이 정신으로 중동이건 아프리카건 혼자 가서 뚝딱 영업을 하고 있었으니. 그래서 (주)대우 출신들이 독립 후 생존/성공 확률이 더 높았다.
"24년 만에 새주인 모두 찾은 대우. 대우는 한국 산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국내외 35만 명의 대우맨이 41개 계열사에서 활약하며 현대에 이은 재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김 회장의 회고록 제목처럼 해외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새 시장을 개척한 기업이 대우였다. 국내 최초의 경차로 국민차 타이틀을 얻었던 ‘티코’, 튼튼한 가전제품을 만들겠다는 슬로건 ‘탱크주의’ 등은 대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들이다.
그룹이 해체되고 나서 사반세기 동안 대우맨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대우가 남긴 유산들은 한국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30505/119159374/1
#DaeroWon
1997년말 IMF 사태가 터지기 직전, 회광반조(廻光返照, 해가 지기 직전에 일시적으로 햇살이 강하게 비추어 하늘이 잠시 동안 밝아지는 자연 현상)처럼, 대우 역시 여러가지 풍성한 이벤트들을 만들었다.
문인들을 모아 대우 해외공장 시찰도 보내주고, 대학생들 모아 유럽 공장 견학을 보내주기도 했다.
당시 운 좋게 한 자리 낄 기회를 얻어, 영국의 대우 자동차 디자인 연구소, 폴란드의 대우 자동차 (당시 국영 자동차 회사를 인수), 프랑스의 대우전자 전자렌지 생산공장 등을 견학.
대우 깃발 아래 현지인들을 고용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고, 국뽕이 차 올라 무척 감개무량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도 그 이후, 내가 드라마 '미생'같은 종합상사를 직장으로 선택하게 된 모티브가 된 듯. 다행히(?) 대우를 살짝 피해 다른 곳으로 가긴 했지만, 거기서도 제일 무서운 경쟁사는 (주)대우 (현 포스코 인터내셔널)이었다. 우리는 조직력으로 영업을 하는 반면, 대우맨은 독고다이 정신으로 중동이건 아프리카건 혼자 가서 뚝딱 영업을 하고 있었으니. 그래서 (주)대우 출신들이 독립 후 생존/성공 확률이 더 높았다.
"24년 만에 새주인 모두 찾은 대우. 대우는 한국 산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국내외 35만 명의 대우맨이 41개 계열사에서 활약하며 현대에 이은 재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김 회장의 회고록 제목처럼 해외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새 시장을 개척한 기업이 대우였다. 국내 최초의 경차로 국민차 타이틀을 얻었던 ‘티코’, 튼튼한 가전제품을 만들겠다는 슬로건 ‘탱크주의’ 등은 대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들이다.
그룹이 해체되고 나서 사반세기 동안 대우맨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대우가 남긴 유산들은 한국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30505/119159374/1
#DaeroWon
동아일보
24년 만에 새주인 모두 찾은 대우… ‘간판’ 사라져가도 ‘대우맨’은 남아
《그룹 해체 24년… 사라져가는 ‘대우 간판’한때 재계 서열 2위를 차지했던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24년이 흘렀다. 경차의 상징 ‘티코’, 고장 없는 가전 ‘탱크주의’ 등으로 한…
❤5👍1👏1
역사적 관점에서 지난 10년은 가장 낮은 금융비용으로 주택을 살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저임금 거대인구 중국의 세계 공장화로 디플레이션 수출, 반도체, 컴퓨터, 인터넷, 무선통신,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생산성의 비약적 증가, 세계화와 공급망 통합, 지구 온난화에 따른 장기적인 물가 안정을 기반으로 금리가 하락하면서 채권 가격이 올랐고, 덕분에 2012년부터 2021년까지 모기지 금리가 모기지 금리 역사상 최저 수준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고임금 중국의 물가 상승으로 디플레이션 수출의 한계, 반세계화와 지역별 반목 갈등에 따른 세계 공급망 와해, 태양 흑점 주기 인벨럽이 낮아짐에 따른 지구 기온의 장기적 하락, 그리고 ;정보통신 기술 발달에 따른 생산성 향상 둔화 등으로 장기적으로 물가가 과거와 같은 안정을 보이기 어렵다. 더구나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재정적자 증가로 인한 화폐가치 하락은 장기적 물가 상승의 요인이다.
따라서 지난 40여년에 걸쳐 누려왔던 안정적인 물가의 시대는 우리 생애에 다시 경험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따라서 과거와 같은 저금리 시대도 도래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앞으로 전개되는 세상은 지난 40여년 익숙한 그런 세계가 아니라 고물가와 고금리가 중심이 되는 그런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 될 수 있다.
#김철상
저임금 거대인구 중국의 세계 공장화로 디플레이션 수출, 반도체, 컴퓨터, 인터넷, 무선통신,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생산성의 비약적 증가, 세계화와 공급망 통합, 지구 온난화에 따른 장기적인 물가 안정을 기반으로 금리가 하락하면서 채권 가격이 올랐고, 덕분에 2012년부터 2021년까지 모기지 금리가 모기지 금리 역사상 최저 수준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고임금 중국의 물가 상승으로 디플레이션 수출의 한계, 반세계화와 지역별 반목 갈등에 따른 세계 공급망 와해, 태양 흑점 주기 인벨럽이 낮아짐에 따른 지구 기온의 장기적 하락, 그리고 ;정보통신 기술 발달에 따른 생산성 향상 둔화 등으로 장기적으로 물가가 과거와 같은 안정을 보이기 어렵다. 더구나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재정적자 증가로 인한 화폐가치 하락은 장기적 물가 상승의 요인이다.
따라서 지난 40여년에 걸쳐 누려왔던 안정적인 물가의 시대는 우리 생애에 다시 경험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따라서 과거와 같은 저금리 시대도 도래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앞으로 전개되는 세상은 지난 40여년 익숙한 그런 세계가 아니라 고물가와 고금리가 중심이 되는 그런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 될 수 있다.
#김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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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욱씨는 7막 7장을 100만부 판 돈으로 재즈 클럽 사업을 하면서 외국 유명 아티스트를 데려와 공연을 하고 즐겁게 2년만에 돈을 다 썼다고 한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젊은 나이에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
조승연 이란 작가는 배스트셀러 50만부 책 작가로
갑자기 번 큰돈을 마구 마구 썼는데.
1. 4천만원 짜리 피아노를 삼
2. 350만원 월세 내는 좋은 집을 삼
3. 미슐렝 맛집을 투어 함
4. 각종 명품 좋은 옷과 물건등을 계속 구매함
2년만에 다 탕진 되고 0원이 됨. 라디오 스타에서 했던 이야기.
젊은 나이에 큰 돈을 버는 건 가능 하다.
5개국어를 하고 책을 17권을 썼어도.
'돈의 심리학'을 모르면 이 렇다.
재밌는 건 조성연씨 최근 영상에 돈의 심리학의 내용을 인용 하길래 놀람. 돈의 심리학은 인문학책에 가깝긴 한데 안어울리게 읽고 있었음.
결국 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음. 홍정욱 씨도 최근 쓴 수필집 읽어 보면 그냥 중견 그룹 대표 글임. 스티브잡스와 피터틸 팀페리스 인용 하시고..
"스물셋에 《7막 7장》 인세로 적지 않은 돈을 벌게 된 나는 이를 모조리 투자해 1995년 봄 청담동에 카멜롯서울이라는 라이브 재즈 클럽을 열었다. 베이징대학교 대학원을 그만두고 스탠퍼드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하기 전 몇 개월의 짬이 있을 때였다.
카멜롯서울은 사업으로서는 실패였다. 그러나 나는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들을 서울에 초청했고, 공연이 끝난 뒤 그들과 함께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음악을 얘기했다. 나는 왜 돈 많고 재능 없는 부자들이 예술가들을 가까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도 그들 중 하나라는 기분 좋은 착각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 <50 홍정욱 에세이>, 홍정욱
#이종성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젊은 나이에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
조승연 이란 작가는 배스트셀러 50만부 책 작가로
갑자기 번 큰돈을 마구 마구 썼는데.
1. 4천만원 짜리 피아노를 삼
2. 350만원 월세 내는 좋은 집을 삼
3. 미슐렝 맛집을 투어 함
4. 각종 명품 좋은 옷과 물건등을 계속 구매함
2년만에 다 탕진 되고 0원이 됨. 라디오 스타에서 했던 이야기.
젊은 나이에 큰 돈을 버는 건 가능 하다.
5개국어를 하고 책을 17권을 썼어도.
'돈의 심리학'을 모르면 이 렇다.
재밌는 건 조성연씨 최근 영상에 돈의 심리학의 내용을 인용 하길래 놀람. 돈의 심리학은 인문학책에 가깝긴 한데 안어울리게 읽고 있었음.
결국 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음. 홍정욱 씨도 최근 쓴 수필집 읽어 보면 그냥 중견 그룹 대표 글임. 스티브잡스와 피터틸 팀페리스 인용 하시고..
"스물셋에 《7막 7장》 인세로 적지 않은 돈을 벌게 된 나는 이를 모조리 투자해 1995년 봄 청담동에 카멜롯서울이라는 라이브 재즈 클럽을 열었다. 베이징대학교 대학원을 그만두고 스탠퍼드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하기 전 몇 개월의 짬이 있을 때였다.
카멜롯서울은 사업으로서는 실패였다. 그러나 나는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들을 서울에 초청했고, 공연이 끝난 뒤 그들과 함께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음악을 얘기했다. 나는 왜 돈 많고 재능 없는 부자들이 예술가들을 가까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도 그들 중 하나라는 기분 좋은 착각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 <50 홍정욱 에세이>, 홍정욱
#이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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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버는 건 '천재성'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ㄷㄷ>
1. 사람들은 노력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발명왕 에디슨이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근거로 제시한다.
2. 그런데 정말 범재들이 죽어라고 주식에 대해 공부하고 노력하면, 1년에 2000% 가량의 수익을 낼 수 있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3. (나 세이노도) 어렸을 때는 정말 노력만 하면 천재 비슷하게 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니 그런 말들은 주로 “이미 1%의 영감을 타고난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고, 그저 천재가 둔재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서 “당신들도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보내는 격려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4. 국어사전에서조차도 천재를 “타고난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러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할 뿐, ‘노력의 결과'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5. 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실망하지 말라. 돈은 ‘1%의 영감을 타고난 천재’만 벌 수 있는 게 아니다. 돈을 번다는 건 다른 보통 사람들과의 게임이지, 당신보다 크게 잘난 사람들과의 게임이 아니다.
6. 게다가 이른바 공부 잘하고 머리 좋다는 사람들은 거의 다 학교나 연구소 혹은 법조계나 의료계 또는 유명 기업들에 있다. 이 얼마나 기쁜 사실인가?
7. 서울대 이공계 수석 입학생의 80% 이상이 나중에 교수가 됐다는 보고서도 있다. 이 역시 (돈을 벌고자 하는) 범재들에게는 너무나 다행한 일 아닌가?
8. 부자가 되는 데는 신이 내린 어떤 재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학벌도, 배경도, 자격증도 큰 도움이 안 된다. 부자가 되는 길을 걷고자 한다면 이걸 빨리 깨달아야 한다. 결국 이건 다른 보통 사람들과의 게임일 뿐이며, (천재와 싸워서 이겨야 할 정도로)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9. 단지 다른 사람들이 놀 때 놀지 말고, 그들이 돈을 쓸 때 덜 씀으로써 목돈을 준비하고, (그렇게) 기회를 찾으면 된다.
10.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피터 드러커 역시 높은 성과를 올리는 생산적인 사람, 끊임없이 혁신을 꾀하면서 계속해서 발전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비중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는 길은 오직 '지속적인 관리'와 '노력'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11. 부자가 되는 데 있어서 경쟁자는 천재가 아니라, 결국은 ‘자신의 의지’라는 이 지극히 간단한 사실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각인되기를 바란다.
12.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부자인지를 보여 주려고 과시하는 놈들은 절대 믿지 마라. 부동산 고수로 알려진 놈들이 현장 답사 비용으로 수십, 수백만 원 내리고 하는 건, 그 놈들이 당신 돈으로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일 뿐이다.
- 세이노, <세이노의 가르침> 중
#SomewonYoon
1. 사람들은 노력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발명왕 에디슨이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근거로 제시한다.
2. 그런데 정말 범재들이 죽어라고 주식에 대해 공부하고 노력하면, 1년에 2000% 가량의 수익을 낼 수 있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3. (나 세이노도) 어렸을 때는 정말 노력만 하면 천재 비슷하게 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니 그런 말들은 주로 “이미 1%의 영감을 타고난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고, 그저 천재가 둔재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서 “당신들도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보내는 격려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4. 국어사전에서조차도 천재를 “타고난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러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할 뿐, ‘노력의 결과'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5. 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실망하지 말라. 돈은 ‘1%의 영감을 타고난 천재’만 벌 수 있는 게 아니다. 돈을 번다는 건 다른 보통 사람들과의 게임이지, 당신보다 크게 잘난 사람들과의 게임이 아니다.
6. 게다가 이른바 공부 잘하고 머리 좋다는 사람들은 거의 다 학교나 연구소 혹은 법조계나 의료계 또는 유명 기업들에 있다. 이 얼마나 기쁜 사실인가?
7. 서울대 이공계 수석 입학생의 80% 이상이 나중에 교수가 됐다는 보고서도 있다. 이 역시 (돈을 벌고자 하는) 범재들에게는 너무나 다행한 일 아닌가?
8. 부자가 되는 데는 신이 내린 어떤 재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학벌도, 배경도, 자격증도 큰 도움이 안 된다. 부자가 되는 길을 걷고자 한다면 이걸 빨리 깨달아야 한다. 결국 이건 다른 보통 사람들과의 게임일 뿐이며, (천재와 싸워서 이겨야 할 정도로)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9. 단지 다른 사람들이 놀 때 놀지 말고, 그들이 돈을 쓸 때 덜 씀으로써 목돈을 준비하고, (그렇게) 기회를 찾으면 된다.
10.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피터 드러커 역시 높은 성과를 올리는 생산적인 사람, 끊임없이 혁신을 꾀하면서 계속해서 발전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비중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는 길은 오직 '지속적인 관리'와 '노력'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11. 부자가 되는 데 있어서 경쟁자는 천재가 아니라, 결국은 ‘자신의 의지’라는 이 지극히 간단한 사실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각인되기를 바란다.
12.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부자인지를 보여 주려고 과시하는 놈들은 절대 믿지 마라. 부동산 고수로 알려진 놈들이 현장 답사 비용으로 수십, 수백만 원 내리고 하는 건, 그 놈들이 당신 돈으로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일 뿐이다.
- 세이노, <세이노의 가르침> 중
#Somewon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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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살때 1억 모은 비법
* 제가 고추가루 장사를 하게 된 계기입니다.
* 예전에 재테크 사이트에 쓴 글 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빤스한장만 남은 빈곤층 입니다.
많은 분들이 종자돈1억 어떻게 모왔냐며 가르쳐 달라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글을 써봅니다..
하지만 긴장이 됩니다...
모두들 저놈이 어떻게 27살에 1억모았지.. 하고 째려보고 계시는것 같아서.. ㅎㅎ
어제도 막막하더니.. 시간이 날때 쓰려고 해도 막막하네요.. 글솜씨가 워낙 없어서...
그냥 제가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면서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네요. 맨손으로 서울 올라온지가 벌써 15년이 되었네요. 아버지가 빚보증으로 전재산4억있던거 다날리고(시골에서 그당시 4억이면 못사는건 아니었는데) 빚이1억8천 생겨서 아버지 잠시 잠수타시고 집에 차압들어 오던날 그때 제나이 중학교2학년 이었는데 어머니 한테 돈벌어오겠다고 무작정 5만원 빌려서 반드시 성공해서 내려오겠다고 큰절올리고 벅찬마음으로 서울에 상경했습니다.
떠날때 어머니가 넌 반드시 장사로 성공할 놈이라고 해서 그말만 철썩같이 믿고 서울에 처음 취직한곳이 짜장면 집입니다. 장사도 밑천이 있어야 하니까요. 짜장면집이 월급이 쎄요.ㅎㅎ 장사가 빨리하고 싶어서 짜장면배달해서 600만원만 모으면 작지만 저만에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중학교도 못나왔기에 할수있는게 오토바이타는거 밖에 없어서 쉬는날없이 정말 열심히도 모왔네요.
그렇게 600만 모이면 조그만 장사해서 말아먹고. ㅡㅡ 붕어빵노점상부터 .가락동야채장사. 씨앗장사. 해물장사... 가끔 다단계도 해보고 ㅡㅡ 정말 열심히도 했는데 자본이 없이 하다보니 하는거 마다 망했습니다.
그 후로 도대체 어떻게 하면 돈벌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눈에띈...
길거리에서 운수보는 할아버지.. 도장도 같이 파고 있엇는데..
운수보는 손님들보다 도장파러온 사람들이 더 많더군요.. 순간 앗~ 저거다..
운수보러온척 슬쩍 다가가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유심히 살펴보니...
별거 아닌것 같아서.. 재료 구입해서 파봤습니다.. 한 30개정도 날려버리고 나니.. 나름 제 이름 빈곤층 이라고 알아볼수 있게 나오더군요..
그래서 시작한 장사는 나름 짭짤하였습니다.. 나무도장 하나파주면 5000원씩 받았는데 나무도장재료하나 원가가 60원 했으니... 미용실에서 머리깍아 주고 5000원 받는 것 만큼 이윤이 많이 남았었죠..
상아도장은 2만원짜리 재료사서 20만원을 받았으니.. 하나만 파도 일당이 됐었죠.. ㅋㅋㅋ
그렇게 돈을 벌기시작해서.. 가게하나 내서인쇄소랑 같이 도장을 팠는데... 그당시 인쇄도 화폐찍어내는 공장이라 불릴만큼 돈벌이가 좋았습니다.. 코렐드로우랑 포토샵 혼자 독학해서.. 개업집 찌라시랑 청첩장 디자인해서 찍어내는 실력까지 갖추게 돼었고... 나름 친구 들한테 빈사장소리 들으며...
부러움에 대상이었는데... 역시 바로 망하고 맙니다..
대형 인쇄공장이 시내에 생긴거지요. 칼라명함5통에 3만원
난 100장에 3만원 인데 ㅡ.ㅡ
대형마트 생기고 동네슈퍼 하나 둘 망하듯이... 하나 둘 손님이 줄더니.. 결국 하루에 두명 오더군요... 저도 큰 기계를 구입하려고 했는데 대형 옵셋인쇄기가 5억.. 이라고 해서 살 엄두도 못내고.... --^
어쨋든 또 망합니다..
하도 망해서 다시 배달하러 돌아오니까 중국집 사장님이 언제부턴가는 제가 장사하러 간다고하면 그래 또만나자 하면서 곧만날사람처럼 인사도 점점 성의 없어지더라구요.. ㅡㅡ
사장님 인사드리론 다시 오겠지만 이젠 정말 일하러는 오지는 않을겁니다. 하고 비장한 각오로 인사 드리고 나와서 인생작전을 다시 짯습니다.
큰소리는 쳤지만 사실 장사는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근데 취직하려고 벼룩시장 보고 찾아가면 정수기 같은거 영업만 시키고... (제가 쬐끔 잘생기고 성격이 좋아서 영업을 잘하긴 하지만 ㅎㅎ). 학력이 안좋은 제가 마땅히 할만한 일이 없더군요...
비전없는 중국집 배달도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더이상 안되겠다 싶어서..
그래... 한번뿐인 인생 마지막으로 장사 딱 한번만 제대로 해보자 하고 큰마음먹고 한게 먹는장사 였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일요일도 없이 죽도록 일해서 남은돈이 원룸보증금 300만원 ㅡㅡ
식당 차릴 돈이 없어서 살고있던 원룸보증금 300만원 빼서 잘곳이 없으니까 같이 동네에서 배달하다 만나서 친해진 동생한테 찾아가서 으싸으싸 사업설명하고 같이 골목에 신나게 한식배달전문점을 차렸습니다.
동생은 배달. 저는 요리및 안바쁠때 배달보조와 설거지 담당 ㅎ
집은 눈치보이지만 어쩔수 없이 동생원룸에 얹혀 살았습니다.
큰기대를 갖고 테이블2개놓구 배달만 전문적으로 했는데 배달장사가 힘들더군요. 그당시 김치찌게3500원 하던 시절인데 배달해주고 그릇도 찾아오고 산더미 같은 설거지에. 그래도 돈만벌면 행복했을텐데 이 배달이란게 점심때만 죽어라 몰리고 한달에 한번도 안쉬고 하루 14시간을 열심히 해봤자 하루 20만원 팔기가 힘들더군요.
특히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5층에서 한그릇만 죽어라 시키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래도 참고... 그래... 시집가면 2그릇씩 시키겠지 하고 참고 배달해줬는데 그런 제 기대가 무색할만큼 너무 못생겨서...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는것 같아 저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달장사하니 순수하게 남은돈이 90만원 정도 되었는데 동생월급이 120이라. 다 주지 못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물론저는 죽어라 일하고 월급하나도 못받았구요. ㅡㅡ
하지만 사장이 적자났다고 직장인한테 월급깍자는게 말이 안되지요... 동생이 화나서 그만둔다고 하면서 저보고 집에서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때 눈오던 겨울이었는데 제가 그동생한테 울면서 조금만 있게 해달라고 빌던 기억이 나네요.
발뻗고잘 내집하나 없는 서러움 제대로 느꼈습니다. ㅎ
그치만 화가 많이 나서인지 결국 나가라고하더군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한달 개고생시키고 월급을 다 못줬으니 제가 나쁜놈이죠 뭐...
밤에 나와서 지하철역에서 노숙을 하면서 가게도 정리하고 서울에 흔적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니까... 그래도 낯선 서울에서 내가 해볼만큼은 했다 싶데요.
서울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안되는건 안되더라구요. 처음 서울와서 63빌딩 보고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각납니다...
남자답게 깨끗히 포기하고 시골로 다시 내려가려고 서울역에 밤에 도착했습니다. 새벽에 도착하면 어머니 놀라실까봐 새벽첫차 타고 아침에 들어 가려고 서울역 다리건너 큰공원이 있었는데 거기서 하룻밤 노숙을 하고 다음날 새벽4에 일어나서 출발을 하려는데 발걸음이 안떨어져서 벤치에 앉아 담배하나 피웠습니다.
정말 하루도 안쉬고 신발바닥 구멍나도 빗물 고인데 피해다니며 기본2년이상은 신고 삽겹살도 먹고싶어도 참았다가 두달에한번 1인분에 2천원짜리 먹으며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내꼬라지를 보니 서러워서 눈물이 나데요. 어머니 뵐 면목도 없고. 친구들 보기도 창피하고....
그때 우연히 서울역 다리건너로 노점상들이 보이더라구요. 새벽에 왠 노점상이야 하고 가서 보니 아주조그만 새벽시장 이더군요...
새벽4시라 내가 일찍 일어났다 생각했는데 여기 사람들을 보니 제가 제일 늦게 일어났더라구요. 나이들이 많으신데 작업장화신고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들을 보니 다시 한번 해봐야 되겠다 싶데요...
그렇게 불빛을 따라 시장을 가보니 우리가 알던 그런 시장이 아니고 새벽2시부터 아침11시까지만 열리는 도깨비 시장이었습니다.
이름은 중림시장이라고 하고 한때 서울에서 몇손가락안에 드는 큰 시장이었는데 지금은 쇠퇴하여 새벽에만 열리는 작은 도깨비 시장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새벽에 열리는 만큼 일반인이 아닌 식당사장님들이 주 손님이었습니다.
기분이 거시기 하데요...
아... 내가 드디어 시장바닥 까지 굴러들어왔구나. 어머니가 분명 장사로 성공한다고 했는데 시장바닥에 또 배달하러 들어오다니.... 기분이 너무 우울하더군요...
하지만 시골내려가는것 보단 낫겠단 생각이들어서 제일큰 식자재하는곳에 들어가서
"사장님 직원 안구하세요." 하고 물어보니
말하기도 귀찮은듯 저를 거지 취급하며 손짓으로 꺼지라고 하더군요.
* 제가 고추가루 장사를 하게 된 계기입니다.
* 예전에 재테크 사이트에 쓴 글 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빤스한장만 남은 빈곤층 입니다.
많은 분들이 종자돈1억 어떻게 모왔냐며 가르쳐 달라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글을 써봅니다..
하지만 긴장이 됩니다...
모두들 저놈이 어떻게 27살에 1억모았지.. 하고 째려보고 계시는것 같아서.. ㅎㅎ
어제도 막막하더니.. 시간이 날때 쓰려고 해도 막막하네요.. 글솜씨가 워낙 없어서...
그냥 제가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면서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네요. 맨손으로 서울 올라온지가 벌써 15년이 되었네요. 아버지가 빚보증으로 전재산4억있던거 다날리고(시골에서 그당시 4억이면 못사는건 아니었는데) 빚이1억8천 생겨서 아버지 잠시 잠수타시고 집에 차압들어 오던날 그때 제나이 중학교2학년 이었는데 어머니 한테 돈벌어오겠다고 무작정 5만원 빌려서 반드시 성공해서 내려오겠다고 큰절올리고 벅찬마음으로 서울에 상경했습니다.
떠날때 어머니가 넌 반드시 장사로 성공할 놈이라고 해서 그말만 철썩같이 믿고 서울에 처음 취직한곳이 짜장면 집입니다. 장사도 밑천이 있어야 하니까요. 짜장면집이 월급이 쎄요.ㅎㅎ 장사가 빨리하고 싶어서 짜장면배달해서 600만원만 모으면 작지만 저만에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중학교도 못나왔기에 할수있는게 오토바이타는거 밖에 없어서 쉬는날없이 정말 열심히도 모왔네요.
그렇게 600만 모이면 조그만 장사해서 말아먹고. ㅡㅡ 붕어빵노점상부터 .가락동야채장사. 씨앗장사. 해물장사... 가끔 다단계도 해보고 ㅡㅡ 정말 열심히도 했는데 자본이 없이 하다보니 하는거 마다 망했습니다.
그 후로 도대체 어떻게 하면 돈벌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눈에띈...
길거리에서 운수보는 할아버지.. 도장도 같이 파고 있엇는데..
운수보는 손님들보다 도장파러온 사람들이 더 많더군요.. 순간 앗~ 저거다..
운수보러온척 슬쩍 다가가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유심히 살펴보니...
별거 아닌것 같아서.. 재료 구입해서 파봤습니다.. 한 30개정도 날려버리고 나니.. 나름 제 이름 빈곤층 이라고 알아볼수 있게 나오더군요..
그래서 시작한 장사는 나름 짭짤하였습니다.. 나무도장 하나파주면 5000원씩 받았는데 나무도장재료하나 원가가 60원 했으니... 미용실에서 머리깍아 주고 5000원 받는 것 만큼 이윤이 많이 남았었죠..
상아도장은 2만원짜리 재료사서 20만원을 받았으니.. 하나만 파도 일당이 됐었죠.. ㅋㅋㅋ
그렇게 돈을 벌기시작해서.. 가게하나 내서인쇄소랑 같이 도장을 팠는데... 그당시 인쇄도 화폐찍어내는 공장이라 불릴만큼 돈벌이가 좋았습니다.. 코렐드로우랑 포토샵 혼자 독학해서.. 개업집 찌라시랑 청첩장 디자인해서 찍어내는 실력까지 갖추게 돼었고... 나름 친구 들한테 빈사장소리 들으며...
부러움에 대상이었는데... 역시 바로 망하고 맙니다..
대형 인쇄공장이 시내에 생긴거지요. 칼라명함5통에 3만원
난 100장에 3만원 인데 ㅡ.ㅡ
대형마트 생기고 동네슈퍼 하나 둘 망하듯이... 하나 둘 손님이 줄더니.. 결국 하루에 두명 오더군요... 저도 큰 기계를 구입하려고 했는데 대형 옵셋인쇄기가 5억.. 이라고 해서 살 엄두도 못내고.... --^
어쨋든 또 망합니다..
하도 망해서 다시 배달하러 돌아오니까 중국집 사장님이 언제부턴가는 제가 장사하러 간다고하면 그래 또만나자 하면서 곧만날사람처럼 인사도 점점 성의 없어지더라구요.. ㅡㅡ
사장님 인사드리론 다시 오겠지만 이젠 정말 일하러는 오지는 않을겁니다. 하고 비장한 각오로 인사 드리고 나와서 인생작전을 다시 짯습니다.
큰소리는 쳤지만 사실 장사는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근데 취직하려고 벼룩시장 보고 찾아가면 정수기 같은거 영업만 시키고... (제가 쬐끔 잘생기고 성격이 좋아서 영업을 잘하긴 하지만 ㅎㅎ). 학력이 안좋은 제가 마땅히 할만한 일이 없더군요...
비전없는 중국집 배달도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더이상 안되겠다 싶어서..
그래... 한번뿐인 인생 마지막으로 장사 딱 한번만 제대로 해보자 하고 큰마음먹고 한게 먹는장사 였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일요일도 없이 죽도록 일해서 남은돈이 원룸보증금 300만원 ㅡㅡ
식당 차릴 돈이 없어서 살고있던 원룸보증금 300만원 빼서 잘곳이 없으니까 같이 동네에서 배달하다 만나서 친해진 동생한테 찾아가서 으싸으싸 사업설명하고 같이 골목에 신나게 한식배달전문점을 차렸습니다.
동생은 배달. 저는 요리및 안바쁠때 배달보조와 설거지 담당 ㅎ
집은 눈치보이지만 어쩔수 없이 동생원룸에 얹혀 살았습니다.
큰기대를 갖고 테이블2개놓구 배달만 전문적으로 했는데 배달장사가 힘들더군요. 그당시 김치찌게3500원 하던 시절인데 배달해주고 그릇도 찾아오고 산더미 같은 설거지에. 그래도 돈만벌면 행복했을텐데 이 배달이란게 점심때만 죽어라 몰리고 한달에 한번도 안쉬고 하루 14시간을 열심히 해봤자 하루 20만원 팔기가 힘들더군요.
특히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5층에서 한그릇만 죽어라 시키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래도 참고... 그래... 시집가면 2그릇씩 시키겠지 하고 참고 배달해줬는데 그런 제 기대가 무색할만큼 너무 못생겨서...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는것 같아 저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달장사하니 순수하게 남은돈이 90만원 정도 되었는데 동생월급이 120이라. 다 주지 못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물론저는 죽어라 일하고 월급하나도 못받았구요. ㅡㅡ
하지만 사장이 적자났다고 직장인한테 월급깍자는게 말이 안되지요... 동생이 화나서 그만둔다고 하면서 저보고 집에서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때 눈오던 겨울이었는데 제가 그동생한테 울면서 조금만 있게 해달라고 빌던 기억이 나네요.
발뻗고잘 내집하나 없는 서러움 제대로 느꼈습니다. ㅎ
그치만 화가 많이 나서인지 결국 나가라고하더군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한달 개고생시키고 월급을 다 못줬으니 제가 나쁜놈이죠 뭐...
밤에 나와서 지하철역에서 노숙을 하면서 가게도 정리하고 서울에 흔적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니까... 그래도 낯선 서울에서 내가 해볼만큼은 했다 싶데요.
서울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안되는건 안되더라구요. 처음 서울와서 63빌딩 보고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각납니다...
남자답게 깨끗히 포기하고 시골로 다시 내려가려고 서울역에 밤에 도착했습니다. 새벽에 도착하면 어머니 놀라실까봐 새벽첫차 타고 아침에 들어 가려고 서울역 다리건너 큰공원이 있었는데 거기서 하룻밤 노숙을 하고 다음날 새벽4에 일어나서 출발을 하려는데 발걸음이 안떨어져서 벤치에 앉아 담배하나 피웠습니다.
정말 하루도 안쉬고 신발바닥 구멍나도 빗물 고인데 피해다니며 기본2년이상은 신고 삽겹살도 먹고싶어도 참았다가 두달에한번 1인분에 2천원짜리 먹으며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내꼬라지를 보니 서러워서 눈물이 나데요. 어머니 뵐 면목도 없고. 친구들 보기도 창피하고....
그때 우연히 서울역 다리건너로 노점상들이 보이더라구요. 새벽에 왠 노점상이야 하고 가서 보니 아주조그만 새벽시장 이더군요...
새벽4시라 내가 일찍 일어났다 생각했는데 여기 사람들을 보니 제가 제일 늦게 일어났더라구요. 나이들이 많으신데 작업장화신고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들을 보니 다시 한번 해봐야 되겠다 싶데요...
그렇게 불빛을 따라 시장을 가보니 우리가 알던 그런 시장이 아니고 새벽2시부터 아침11시까지만 열리는 도깨비 시장이었습니다.
이름은 중림시장이라고 하고 한때 서울에서 몇손가락안에 드는 큰 시장이었는데 지금은 쇠퇴하여 새벽에만 열리는 작은 도깨비 시장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새벽에 열리는 만큼 일반인이 아닌 식당사장님들이 주 손님이었습니다.
기분이 거시기 하데요...
아... 내가 드디어 시장바닥 까지 굴러들어왔구나. 어머니가 분명 장사로 성공한다고 했는데 시장바닥에 또 배달하러 들어오다니.... 기분이 너무 우울하더군요...
하지만 시골내려가는것 보단 낫겠단 생각이들어서 제일큰 식자재하는곳에 들어가서
"사장님 직원 안구하세요." 하고 물어보니
말하기도 귀찮은듯 저를 거지 취급하며 손짓으로 꺼지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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